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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배 정부공직자윤리위원장 비타민 A, B, C, D 중 우리 몸 안에서 실제로 영양소로 작용하는 것은 섭취된 비타민 중에 가장 적은 양의 비타민에 의해서다. 비타민 C를 아무리 많이 섭취해도 비타민 A를 전혀 섭취하지 않으면 비타민 C도 제 기능을 못한다. 이를 ‘비타민 최소율의 법칙’이라고 한다. 모든 비타민을 최소 필요량 이상 섭취해야만 비타민이 우리 몸속에서 제 기능을 한다.
이 법칙을 공직사회에 적용해 보자. 모든 공무원이 공정하고 청렴한 윤리의식을 지닌다면 정부는 아무런 문제없이 잘 돌아갈 것이다. 만일 부정부패한 공무원이 있다면 그로 인해 전체 공직사회는 국민에게 부정적인 인상을 심어주는 것은 물론 질책을 받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무릇 공인이라면 권력과 재물의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스스로 ‘수신제가’ 하는 게 최상이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누군가 도와줘야 한다. 그 역할을 담당하는 정부 조직이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이하 윤리위)다. 윤리위는 공직자가 스스로 공인으로서 청렴성을 갖출 수 있도록 재산을 심사하고 퇴직공무원의 취업을 관리한다.
“공직을 명예로 생각하고 재물하고는 거리를 둬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상배 위원장에게 공직자 윤리 의식에 대해 물었다.◆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라는 조직이 생소하다. 어떤 기구인가?
조선시대에는 청렴결백한 관리를 선발해 후세에 길이 거울삼게 했던 청백리 제도가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공인은 부와 권력에 마음을 뺏기지 말아야 한다. 고위 공직자라면 아랫사람의 멘토가 되도록 노력하고 공명정대하고 청빈한 삶을 살지 않으면 안 된다.
윤리위는 고위 공직자의 부정한 재산증식 방지와 공무집행의 공정성 확보를 위해 공직자윤리법에 의거해 1993년 8월 설치됐다. 쉽게 말해 지위를 이용해 사적인 곡간을 채우지 말라고 경고하는 조직이다.
공직자가 등록한 재산을 심사하고 고위공직자의 등록 재산을 관보에 공개하는 것, 퇴직공무원이 퇴직 전 3년 동안 담당한 업무와 취업하려는 기업체의 관련성 여부를 심사해 취업승인, 취업확인을 하는 게 우리의 일이다.
세계적으로 공직자의 윤리 수준은 국가경쟁력의 중요한 척도로 인식된다. 공직자가 솔선수범해서 법과 원칙을 지키고 실천해야 정부도 국민에게 신뢰받고, 대외적으로 선진국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공직자의 재산등록 및 공개가 갖는 의미는
공직자는 스스로 양심에 따라 재산을 공개하고, 공개한 재산을 심사받는 것에 대한 심리적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그러니 공직사회를 자율적으로 정화하고 부정한 방법으로 재산을 축적하는 것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다고 본다. 언론이나 시민단체에서도 공개된 재산의 진위여부를 검증할테니 그만큼 비리 개연성이 적어지지 않겠는가.
재산등록은 모든 공직자를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정무직, 4급 이상 공무원, 세무·건축 등 특정분야 5~7급 공무원, 법관, 검사, 지방자치단체장 및 의회의원, 교육감, 공직유관단체 임원이 대상이다.
이들은 재산등록의무자가 된 날부터 1개월 이내에 재산등록을 해야 한다. 재산공개는 정무직, 1급 이상 공무원, 지방자치단체장 및 의회의원, 교육감, 공직유관단체장 등 고위공직자의 의무사항이다. 재산은 관보를 통해 공개한다.◆ 공직자의 재산등록 범위와 심사 기준은
재산등록이 공직자 본인에게만 한정된 건 아니다. 친족에 대해서도 재산을 등록하고 공개해야 한다.
윤리위는 등록 자료를 토대로 재산 취득 경위, 자금 출처 등 어떤 방법으로 재산을 형성했는지 그 과정을 세밀하게 검토한다. 주로 소득에 비해 재산이 많이 늘어난 사람을 중심으로 심사가 이뤄지고, 개인 채권·채무 등이 과다한 경우에는 집중 조사에 들어간다. 새로 취득한 재산에 대해서도 당연히 그 재원이 어디서 마련됐는지 파악한다.
특별히 자리나 지위를 이용한 비리에 대해서 주목하고 있다. 특히 인, 허가 등 비리와 연결고리가 많은 공무원이나 지방의원에 대해서는 업무 처리과정에서 뇌물, 탈세 등 부정한 방법으로 재산을 증식했는지, 정보를 이용해 토지나 주식 등을 구입했는지 여부를 꼼꼼하게 확인한다.◆ 재산을 허위 등록하면 어떻게 되나
재산등록은 거짓이 없어야 한다. 만일 단순한 실수나 경미한 과실이라면 보완조치를 취한다. 그러나 중대한 과실로 잘못 신고하거나 고의적으로 재산을 누락·은닉한 경우, 적법하지 않은 방법으로 재산을 모았을 때는 경중을 가려 경고 및 시정조치, 해임 또는 징계 요구, 과태료 부과 등의 법적 조치를 취한다.
기관장, 단체장이 거짓 자료를 제출하거나 제출 거부를 한다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게 된다. 윤리위원회 출석요구에 정당한 사유 없이 불응하면 6월 이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재산공개자가 재산 형성 과정을 밝혀달라는 요구에 응하지 않은 경우에는 2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공직자의 해임이나 징계를 요구할 수도 있다. 직무와 관련된 재산증식이나 고의적 재산은닉 시, 신고재산과 실제 보유재산의 차이가 3억원 이상일 때, 직무와 관련돼서 재산을 늘리거나 고의적으로 재산을 숨길 경우에 가능하다. 재산공개자가 재산 형성 과정을 거짓으로 설명하거나 허위자료를 제출해도 해임 또는 징계를 요구할 수 있다.
지난해 윤리위에서 재산심사를 한 결과를 보면 보완명령 2162건, 경고 및 시정조치 63건, 과태료 부과 1건, 징계요구 11건에 달한다.◆ 공직자의 청렴의식이 중요한 이유는
해방 이후 우리는 배고픔을 떨치기 위해, 선진국으로 나가기 위해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려왔다. 그 결과 세계 10대 경제대국의 반열에 오르는 성과를 달성했다. 경제성장을 이루기까지 공직자의 노력도 한몫 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경제성장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상대적으로 공직자의 윤리의식을 소홀히 여겨왔던 게 사실이다.
2009년 국제투명성기구(TI) 평가를 보면, 한국의 부패인식지수는 세계 180개국 중 39위를 차지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국 중에서는 22위다. 모두가 반성해야 한다.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 4만 달러가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상응하는 윤리의식을 갖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선진국과 후진국의 큰 차이는 공인의 윤리 문제라고 생각한다.
우리 공직자의 청렴성이 과거에 비해 많이 나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것 가지고는 부족하다. 물질만능의 유혹을 뿌리칠 천직의식이 필요하다. 조선시대에는 이상적인 관료상으로 청백리가 있지 않았나. 황희, 맹사성 같은 청백리처럼 공직자는 누구보다 ‘청렴의 의무’를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공직자가 청렴하면 국민들이 정부를 신뢰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국가 경쟁력이 높아지는 원동력이 된다.◆ 윤리 문제와 관련해서 지방자치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군수, 도지사, 서울시장을 역임한 선배로서 현 민선지방자치에 대한 견해는
아마도 지난해 전 양산시장이 선거비용 때문에 자살한 사건과 관련해 그런 말이 있었던 것 같다. 다시는 되풀이 돼서는 안 되는 안타까운 일이다. 자치단체장이란 자리가 선출직이다 보니 과한 욕심을 부린 결과가 아닌가 생각한다.
천직의식 없이 자리를 탐내서는 안 된다. 유권자의 선택을 소중히 여기고, 지역에 대한 책임의식과 문화의식이 뒤따라야 올바르게 지역을 운영할 수 있다.
지방이 없으면 중진국은 가능하지만 선진국으로 가는 길은 어렵다. 지방이 잘 되려면 능력 있는 사람이 장이 돼야 한다. 행정처리 능력이 부족하거나, 일을 잘 모른다면 지역에 쌓인 현안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무엇보다 지방 자립의 해법을 찾을 수 있는 인물이 필요하다. 지금 자치단체장들은 전문경영인이라고 할 수도 있다. 재정이 어렵다고 볼멘소리를 할 게 아니라 아이디어를 짜내야 한다. 함평군을 봐라. 나비를 매개체로 엄청난 소득을 올리지 않나. 가진 게 없다고 걱정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사람이 모이는 지역을 만들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자치단체장의 정당공천도 문제다. 당연히 폐지해야 한다. 정당과 단체장이 정략적이고 정치적인 끈이 연결되면 문제가 생기는 것은 자명하다. 지방자치는 단체장의 운영상 문제다. 당적 여부는 상관없다.
선출직이어서 상벌 중 상만 존재하는 상황이 된 것 같아 안타깝다. 업무상 공과 사는 확실해 구분해야 하는데, 다음 선거를 위해 유권자의 눈치를 보게 된다. 직원들도 결국은 유권자 아닌가. 그러니 쓴소리 하고 벌을 주는 게 쉽지 않은 상황이다.
국민소득 수준에 따라 의식수준도 받쳐줘야 하는데 조금은 더 성숙해 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공직윤리 확립을 위한 윤리위 계획이나 운영방안은
무엇보다 윤리위 업무인 재산심사 및 취업확인, 승인 제도를 엄정하게 운영할 방침이다.
재산심사의 경우 지난해까지는 누락, 과다를 확인하는 데 무게를 두었으나, 올해부터는 재산 형성 검증으로 전환해 심사한다. 등록자의 재산 취득경위, 소득원 등 재산 형성의 부당성 여부를 중점적으로 확인해 지위를 통해 사리사욕을 채우는 것을 원천봉쇄할 것이다. 특히 비리에 연루되기 쉬운 기관이나 부서의 공직자에 대한 재산심사를 강화할 예정이다.
윤리위라는 공직자 감시 기구가 있는 줄 모르는 국민이 많다. 그동안 음지에서만 묵묵하게 활동해 왔다. 올해부터는 전용 블로그를 운영해 위원회의 취지 및 활동내용을 모든 국민이 알 수 있도록 오픈할 것이다.
오주환 기자 hiskorea@segye.com
- 기사입력 2010.03.07 (일) 15:01, 최종수정 2010.04.06 (화)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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