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선5기 출범 특별기획-① 자치행정 선진화의 조건
[로컬세계]지난 7월1일. 민선 5기 지방자치시대가 시작됐다. ‘천안함’, ‘세종시’, ‘4대강’이라는 중앙정부의 현안, 지방권력의 여소야대로 인한 중앙과 지방 간의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황 속에서 출범한 민선 5기는 자칫 지방자치의 본질이 중앙정부의 문제로 인해 묻혀질 수 있는 현실 앞에 놓여 있다.
‘분권, 자율, 지방화’라는 세계적인 정치 추이 속에서 한국의 지방자치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무엇인지 모색해 봤다. ‘새로움’, ‘시작’이라는 단어 속에는 희망과 기대가 깃들어 있다. 그런 만큼 각 지방정부의 사명과 역할이 막중하다.
지방자치 16년, 민선 5기를 맞은 한국의 지방자치제의 현주소와 앞으로의 발전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로컬세계는 자치행정·무상급식·문화관광·농업·사회복지 등 5개분야 전문가를 통해 조언을 들었다.지방자치 성공의 시작과 끝은 선거를 어떻게 치르느냐에 달려
6.2 지방선거 결과를 두고 민주당의 완승, 한나라당의 참패로 평가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하지만 육동일 교수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지방선거를 정당의 대리전으로 보는 시각에서는 맞는 말이다. 하지만 지방선거 본래의 의미에서 바라보면 선거의 결과는 ‘중앙정치의 완승’이자 ‘지방자치의 참패’로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육 교수는 지방자치 성공의 시작과 끝은 지방선거를 어떻게 치르느냐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그의 시각에 비친 이번 지방선거는 주제는 실종되고 ‘중앙권력심판론’이니 ‘지방권력교체론’이니 하는 중앙 정치의 쟁점만 부각된 채 정권의 중간평가적 의미로 시행된 측면이 크다.
지방선거가 본연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것이다.
"6.2선거, 정권 심판은 성공…국가이슈에 지방현안은 묻혀
정부 개혁 성공적 추진위해선 ‘분권형 시스템’ 전환 필요
자치단체들 행정구역 초월해 공동 현안 협력으로 해결"
“국민 대다수가 선거를 통해 천안함, 4대강, 세종시 수정안, 북풍 등 그동안 실망을 안겨준 현 정권을 심판하고 쌓였던 불만을 표출함으로써 다소 해소되는 긍정적 성과도 있었다. 하지만 인물과 공약 중심의 정책선거는 다음 선거로 그 기대를 미뤄야 하는 상황이다”
깨끗하고 투명한 공천을 하겠다는 정당들은 공천을 둘러싼 비리와 부패로 곤혹을 치러야 했고, 후보들의 지역구 국회의원에 대한 충성심만 공고히 하는 부정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다보니 참신하고 유능한 정치 신인과 여성들의 진출은 기대에 못 미쳤다. 인물과 공약 중심의 정책선거는 자리 잡지 못했다. 여기에 공무원의 줄서기 관행도 근절되지 않았다.
선거 결과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민주당이 광역단체장, 기초단체장, 지방의회 등의 상당수를 점유해 여소야대 양상을 보인 것은 지방정치에서 일당 지배구조가 심화됐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중앙정부의 핵심 사업에 대한 민의의 표현이기는 하다. 여당이 지배하는 중앙정부와 야당이 지배하는 지방정부 간에 4대강, 천안함 등에 대한 갈등과 대립이 첨예화 돼 꼭 필요한 지방의 현안들이 외면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지방자치가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는 육 교수의 걱정이 기우만은 아님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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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과 지방정부의 갈등 깊어지면 안돼
“지방정부와 지역사회가 중앙정부로부터 상당한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받을 수 있는 소위 ‘지방분권형 국가경영체제’가 구축돼야 한다. 중앙집권형 국가관리체제를 근본적으로 탈피하지 못하면 지역 경제의 총체적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의 불균형 심화, 중앙과 지방이 상생하는 국민통합을 이루지 못한다”
육 교수는 무한경쟁의 세계화, 정보화 및 고령화시대에 국가와 지역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양극화를 해소해서 진정한 국민통합을 이루려면 지방분권을 더욱 중시해야 한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지방분권은 좁게는 중앙정부의 권한을 지방에 이양하는 것이지만, 넓게는 중앙에 집중된 권력을 민간부문 즉 시장과 지역사회에 넘겨주는 국가의 재구조화 작업이다.
지방자치와 분권은 산업화, 민주화를 넘어 선진화로 가는 한국의 국가 발전 단계에 있어 지속돼야 하는 흐름이다. -
임무보다 규정, 산출보다 투입 중시
지방자치제를 시작한지 16년째가 됐지만, 아직도 많은 국민들이 지방자치, 지방행정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모든 관심이 중앙과 서울·수도권에 집중된 탓이다.
지방선거 개표를 지켜보면서도 사는 지역에 상관없이 서울시장이 누가 될지, 경기도지사에 당선될 사람이 누구인지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이 현실이다.
대부분의 국가행정은 지방정부를 통해 국민에게 전달된다.
지방자치제를 올바르게 운영하지 못하면 아무리 훌륭한 국가정책이라도 효과를 거둘 수 없다. 중앙정부의 개혁들이 물거품 되기 십상이다.
그렇기에 지방행정체제를 보다 생산적 체제로 개편하고 주민참여와 통제의 활성화를 통해 지방행정의 자율성과 민주성을 확보하는 데 초점을 둬야 한다.
“정부개혁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고,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부정부패와 지역감정 문제를 근원적으로 척결하기 위해서는 중앙의 권력을 과감하게 지방에 이전시키는 지방분권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것은 중앙집권적인 통제 위주의 낡은 국가 경영시스템을 청산하고 자율성에 입각한 분권형 시스템으로 과감히 전환하는 것이다”
육 교수는 지방분권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각 지방정부도 변화와 혁신, 끊임없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조직개편이나 인력감축을 통해 작고 효율적인 지방정부를 구성하고 고객중심, 성과중심, 경쟁중심에 목표를 둬야 한다.
행정관리 방식도 임무보다는 규정, 산출보다는 투입을 중시하고 관료주의를 벗어나 하위 단위의 자율성이 보장되는 새 조직들을 창출해야 한다. 여기에 시민이 자치의식과 능력을 높여 행정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
자치단체 간의 협력이 중요
지방자치는 지역에 착실히 뿌리내리고 있다. 4대강·세종시 등 여야의 정치적 대립과 혼돈, 일촉즉발의 안보위기를 초래한 천안함, 북풍 등에도 불구하고 지역사회는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지방정부가 중앙의 불안이 지방으로 파급되는 현상을 최소화함으로써 지역사회가 안정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지방자치가 풀어야 할 숙제도 여전히 남아 있다.
“일부 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의 고질적인 비리와 부패문제, 여러 지역에서 무분별한 난개발로 인한 폐해, 자치단체 상호간의 지나친 경쟁과 갈등의 양산, 지역이기주의의 과잉표출에서 비롯된 광역사업의 차질 등은 국가 경쟁력 약화를 초래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육 교수는 지방정부가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로 자치단체 간의 협력과 재정자립을 꼽고 있다.
“현재 자치단체들은 여전히 관할 행정구역 위주의 폐쇄적인 행정관행에 빠져 있고, 자치 단체 간 협력을 위한 제도적 기반의 미비, 그리고 단체장과 공무원들의 의식과 능력의 결여로 협력이 거의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국경보다 더 높은 담을 쌓고 있는 것이 작금의 실정이다”
그는 각 지자체들이 행정구역을 초월해 인근 자치단체들과의 협력을 통해 지역의 공동현안을 함께 풀어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역의 발전과 주민들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행정구역을 초월한 대단위 생활권 내지 경제권력을 설정해 교통, 환경, 취업, 치안, 복지, 지역개발 등의 문제를 상생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방자치를 위해서는 자치토양이 있어야 하는데 재정 상태가 악화된 지방정부의 상황에서는 자치를 제대로 펼치기 힘들다. 중앙정부는 여전히 권한, 돈, 인재, 정보를 독점하면서 지방으로의 이양을 계속 주저하고 있다.
“국세와 지방세의 비율은 여전히 8대 2로 변동이 없다. 지방세 수입으로 자기 자치단체의 인건비를 해결하지 못하는 곳이 60%를 상회한다. 종합적으로 현재의 지방자치는 성공적 정착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에 놓여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국제행사 유치 신중해야
육 교수는 재정자립도가 취약한 지방정부가 재정 수입 증대와 지역 홍보를 위해 국제행사를 유치하는 게 바람직한 것인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정확한 예측과 장기계획 없이 무분별하게 국제대회를 유치하는 데만 집중하다보면 득보다 실이 더 많아진다. 유치 성공 시에 준비해야 할 일뿐 아니라 유치실패 시에는 어떻게 마무리해야 그 후유증이 최소화 되는지를 검토하는 일도 대단히 중요하다”
지방정부가 엑스포, 국제대회 등을 유치하려는 것은 국고지원을 받아 지역홍보 및 발전을 꾀할 수 있고, 그로 인해 고용창출 등 경제적 파급효과도 노릴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행사가 성공할 경우 단체장의 치적으로 삼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육 교수는 국제행사가 가져다주는 매력적인 이익도 좋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신중하게 따져보라고 권고한다.
2002년 월드컵을 치른 전국의 경기장 중에 서울 상암동 경기장만 흑자를 유지할 뿐 다른 도시의 경기장은 적자로 인해 고전을 면치못하고 있음을 상기해야 한다.
외국의 경우 1976년 올림픽을 유치했던 캐나다 몬트리올은 10억 달러 적자로 2006년까지 부채를 상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4년 올림픽을 유치한 그리스 아테네도 예상보다 5배 이상의 지출이 이뤄져 빚더미에 올라앉았다고 한다.
“성공의 열매가 크고 달콤하다고 덥석 물어서는 안 된다. 개최의 필요성에 대한 국민적 내지 지역민의 합의과정이 필요하다. 행사의 기본방향과 세부추진사업에 관한 결정과정에서 종합적이고 객관적인 분석이 기초가 돼야 한다” -
사람이 재산이다
이제 막 첫발을 디딘 민선 5기 지방자치에 육동일 교수는 마지막 당부를 전했다.
“주민들을 지방자치에 적극 참여시켜야 한다”
지역주민들의 무관심과 불신을 만회하고, 주민들이 지방자치의 긍정적·부정적 영향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평가할 때 비로소 지방자치가 지역사회에 정착할 수 있다.
“공정한 인사에 무게를 둬야 한다”
지역 인재를 발굴하고 적재적소에 배치해 그들의 능력을 끊임없이 개발시켜 나가야 한다. 라이벌이나 심지어 원수까지 사심 없이 발탁하고 천거했던 제갈공명의 인간경영 전략을 지자체 인사의 귀감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승자와 패자, 지지자 모두 민의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지역의 새로운 미래를 창조하는 데 동참해야 한다.
승자는 경쟁자의 비판을 수용하고 선거 과정에서 분열된 지역사회를 통합함으로써 지역 대화합을 모색해야 한다.뉴스룸 = 오주환 기자 hiskorea@segye.com
- 기사입력 2010.07.05 (월)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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