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옥병 (사)한교급식전국네트워크 상임대표[로컬세계] 6.2 지방선거를 전후해 ‘무상급식’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헌법이 ‘의무교육은 무상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이상 교육의 일환인 학교급식 역시 무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학교급식법 제6조 제1항에 ‘학교급식은 교육의 일환으로 운영되어야 한다’고 명시돼 있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학교급식 비용의 상당부분을 학부모가 부담하고 있는 실정에서 무상급식 실현은 국민적 관심사로 떠올랐다.
우리나라 학교급식은 2003년 학교급식법 시행령 개정으로 전국적으로 확대돼 현재 전면적으로 실시되고 있다.
2008년 현재 전국 초·중·고·특수학교 학생의 97.7%인 745만6000명이 학교급식을 이용하고 있다.
그러나 급식경비가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 급식비 미납사례가 최근 들어 급증하고 있다.
(사)학교급식전국네트워크에 따르면 2006년부터 2008년까지 급식비 미납 학생수는 약 1만5000명 증가했고 연체액은 39억원에 달한다.
"급식, 교육적 가치 포함 의무교육 일환으로 봐야
정부 사업 예산 일부만 지원해도 전면시행 가능
친환경농산물 계약재배…식재료 안전·효율 공급"
배옥병 학교급식전국네트워크 대표는 “급식비를 내지 못했다는 이유로 교사로부터 독촉을 받고 친구들과 밥을 먹지 못하는 일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저소득층에게 제공되는 무료급식 역시 학생들에게 가난이란 ‘낙인’을 찍는 등 수치심을 안겨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는 헌법이 보장하는 의무교육의 목적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급식비 미납 증가는 학부모 부담이 높은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 2008년 전체 급식비 4조3751억원 가운데 학부모 부담은 2조9312억원으로 약 67%를 차지했다. 반면 지자체 부담은 3.9%에 그쳤다. 무료급식을 받는 학생도 전체의 13%에 불과했다.
배 대표는 “현재의 학교급식은 단순히 ‘한끼 식사를 때우는 것’에 머물고 있다”며 “학교급식은 교육적 가치가 포함된 의무교육의 일환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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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부자감세 조정해도 전면시행 가능
왜 무상급식인가? 배 대표는 최근 경기도에서 무상급식을 시행중인 학교를 방문했던 일화를 예로 들었다.
배 대표는 “간담회에서 교사들에게 무상급식을 하면서 가장 좋아진 점을 물으니 급식 질의 향상을 꼽더라. 최근 2년새 경기가 나빠지면서 급식비 미납자가 급증하고 있다. 이는 급식 운영에 필요한 자금 확보를 어렵게 해 질 저하를 가져온다”고 전했다.
일례로 500명의 학생이 급식비를 내야 학교급식이 제대로 운영되는데, 400명이 낸 급식비로 500명분 식사를 준비하려니 질이 나빠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무상급식은 학생수만큼 예산을 확보하기 때문에 학교급식의 안전성은 물론 급식비 독촉 등 교사의 비생산적인 업무까지 없애는 효과가 확인되고 있다.
무상급식은 학부모가 부담하는 급식비를 국가 재정에서 지원함으로써 실현될 수 있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의무교육기간인 초·중등학생에게 무상급식을 실시할 경우 2011년 1조8119억원이 필요하다.
배 대표는 “4대강사업에 쏟아붓는 돈 22조원의 일부 또는 90조원대의 부자감세 일부만으로도 충분히 시행 가능한 것이 무상급식이다. 6.2 지방선거에서 ‘여소야대’, ‘진보교육감 약진’이란 결과는 전체 학교 무상급식 실현이 국민적 요구임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학교급식은 교육뿐 아니라 보편적 복지차원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기 때문에 ‘무상급식을 왜 해야 하나’란 문제에서 한발 나아가 ‘어떻게 실현할까’를 고민할 때라는 것이다. -
“무상급식 시행은 ‘의지’ 문제다”
무상급식 시행을 위한 재원 마련은 자치단체의 ‘의지’ 문제라고 배 대표는 못 박았다.
“서울의 경우 초등학교와 중학교 무상급식에 들어가는 비용이 약 3920억원이다. 각 기초자치단체와 시교육청, 시의회가 분담해 재원을 마련하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분석이 나온다”고 역설했다.
현재 각 지자체는 눈에 보이는 효과를 낼 수 있는 전시성 행정·토목 등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고 있다. 무상급식은 정책의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느냐의 문제라는 것이다.
광역·기초 자치단체에서 무상급식을 효과적으로 시행할 수 있는 시스템은 이미 검증되고 있다. 자치단체별로 학교급식지원센터 설치 등을 이끌어낼 수 있는 민·관 공동 노력에도 힘이 실리고 있는 상황이다.
배 대표가 속한 학교급식네트워크는 2002년 설립 때부터 ‘직영급식’과 ‘친환경급식’, 무상급식을 목표로 사회운동을 추진중이다. 대선과 총선, 지방선거 때마다 3가지 목표를 실현할 수 있는 공약을 요구하면서 국민에게 교육의 일환인 학교급식의 중요성을 인식시켜 나갔다.
배 대표는 “현재 전국적으로 일고 있는 무상급식을 위한 주민조례 제정 운동을 보면 국민적 공감대 형성단계는 넘어섰다고 본다. 집안어른들과 함께 식사를 하며 예절을 배웠던 ‘밥상머리 교육’이 사라진 지금 사회에서 학교급식은 학생들에게 올바른 식습관을 형성시키는 교육차원으로 진행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배 대표는 또 “자치단체별로 학교급식을 올바르게 운영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갈 때다. 중앙정부의 지원은 현재 국회에 계류중인 학교급식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끌어들일 수 있다. 각 자치단체별로 지역특성을 잘 살릴 수 있는 친환경 무상급식 시행에 대한 의지가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
정부지원 끌어내 ‘급식센터’ 설치
무상급식을 효과적으로 시행하려면 우선 광역 또는 기초자치단체별로 학교급식지원센터(이하 급식센터)가 설치돼야 한다.
급식센터는 각 지자체별로 관내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관내에서 소비하는 ‘로컬푸드’ 개념에서 출발한다. 이는 급식재료를 일선 학교에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농가의 수익을 보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지역경제 활성화를 가져온다.
급식센터는 무엇보다 복잡한 유통단계를 생략할 수 있는 계약재배를 실시하기 때문에 싼값에 친환경농산물과 같은 질 좋은 농산물을 급식재료로 공급하게 된다.
배 대표는 “농가에서 980원에 사들인 양파가 중간상인들을 거치면서 1980원에 학교에 납품되는 게 현실이다. 급식센터는 각 학교에서 제출한 표준식단에 근거해 필요한 물량을 농가와 직접 거래하게 된다”고 말했다.
불필요한 유통비용을 줄임으로써 농가와 학교 모두에게 득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질 좋은 급식재료의 안정적 공급, 지역농가의 활로 개척, 비용절감 등 모든 측면에서 급식센터는 무상급식 시행을 위한 발판으로 평가 받는다.
그러나 현행 학교급식법은 ‘급식센터를 기초 시·군·구에 둘 수 있다’며 급식센터 설치를 임의조항으로 규정하고 있다. 중앙정부는 기초자치단체에 급식센터 설치를 떠넘기는 형국이다. 재정자립도가 탄탄한 지자체가 아닌 이상 자체 예산만으로는 설치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현재 광역 또는 기초 시·군·구에 의무적으로 급식센터를 설치토록 한 학교급식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중이다.
배 대표는 “개정안이 통과되면 중앙정부 예산을 끌어들일 수 있기 때문에 급식센터 설치가 활발히 진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
‘직영급식’은 무상급식 위한 기본전제
무상급식 실현을 위한 급식센터 설치는 일선 학교의 ‘직영급식’ 운영이 전제돼야만 가능하다. 급식업체에 학교급식의 모든 운영을 위탁하는 위탁급식은 직영급식보다 식중독사고 발생이 5.3배나 높다.
위탁급식업체가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식재료 사용에 있어서 질보다는 단가가 싼 것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직영급식은 사고가 발생할 경우 학교장이 모든 책임을 지기 때문에 식재료 선정에서부터 급식에 참여하는 구성원 채용에 이르기까지 정성을 기울이게 된다. 사고 발생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배 대표는 “가공식재료의 경우 외국에서 유통기한이 지난 것들을 들여와 재가공해 급식재료로 공급하는 경우도 있다. 학교급식법은 지난 1월19일부로 모든 학교가 직영으로 급식을 운영토록 의무화했다”고 전했다.
현재 전국적으로 직영급식을 시행중인 학교는 95%다. 내년 2월28일까지는 모든 학교가 직영으로 전환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나머지 위탁급식 학교 5%가 서울에 집중돼 있다는 것이다. 서울시내 고등학교의 경우 82%가 위탁으로 운영된다. 직영급식은 친환경급식과 무상급식을 시행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요소다.
배 대표는 “서울시교육청의 직영급식 전환을 위한 강한 의지가 필요하다. 학교급식이 교육임에도 불구하고 위탁급식을 선호하는 교장들이 있다. 위탁급식은 이윤의 극대화를 추구하다보니 안전성 문제뿐 아니라 교육비리가 일어날 수 있는 여지가 크다”고 지적했다.
교육의 일환인 학교급식이 영리를 목적으로 운영되는 상황에서 직영급식이 학교장 책임을 강화해 업무가 가중된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것은 교육자로서의 의무를 저버리는 핑계일 뿐이란 것. -
친환경 일부 품목만 공급 “개선해야”
친환경농산물을 학교 급식재료로 사용하는 ‘친환경급식’ 역시 학생들에게 안전하고 질 좋은 급식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지속 확대되는 추세다.
전국 광역·기초 자치단체에서 200여개의 친환경 학교급식 조례가 제정 또는 개정돼 현재 7533개 학교에서 친환경급식을 실시하고 있다. 전체학교의 60% 이상이 친환경급식을 시행하고 있는 셈이다. 전남도와 제주도의 경우 100% 친환경 학교급식을 실시함은 물론 향후 공공기관 급식에도 친환경농산물을 사용한다는 계획이다.
배 대표는 공급되는 친환경농산물 품목이 한정돼 있다는 점을 현재 친환경급식의 문제로 꼽았다.
“각 지역별로 생산량이 많은 품목만을 친환경급식에 사용하고 있다. 친환경급식 재료의 안정적인 공급이 부분적으로만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앞에서 살펴본 급식센터다. 계약재배로 친환경농산물을 생산하기 때문에 급식재료로 쓰이는 품목의 계획 수립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친환경급식은 각 자치단체가 일반농산물과 친환경농산물간의 차액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관내 친환경농산물의 소비를 촉진하려는 것이 친환경급식의 또 다른 목적인데, 서울처럼 친환경농산물 생산지가 없는 대도시권은 친환경급식 시행에 더욱 큰 한계를 나타내기 마련이다.
서울에는 현재 198개 학교가 친환경급식을 시행하고 있다. 다분히 형식적일 수밖에 없다. 시에서 지원하는 친환경농산물과 일반농산물간의 차액도 학부모에게 일부를 전가시키는 등 취지를 무색케 하고 있다. 이는 유통과정에서 효율성을 극대화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배 대표는 현재 서울에 공급이 가능한 친환경농산물 품목을 조사중이다.
“효과적인 직거래로 시의 지원 없이 친환경급식을 시행하는 학교들도 있다. 이들 학교의 친환경급식 운영체계를 바탕으로 연말쯤 실현가능한 친환경급식 로드맵을 만들려고 한다. 궁극적으로는 ‘서울형 급식센터’가 건립돼 친환경농산물을 수집·공급해야겠지만, 현재의 유통과정을 투명화할 수 있는 단기적인 방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뉴스룸 = 이진욱 기자 jinuk@segye.com
- 기사입력 2010.07.19 (월)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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