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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명여대 캠퍼스 전경 |
교육+연구 이색사업 잇딴 결실…글로벌 안보리더 육성
창학 105주년을 맞은 숙명여대는 지난해부터 매우 ‘색다른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숙대의 재탄생 의지를 담은 중장기 프로젝트 ‘블루리본’이다. 교육과 연구 문화에서의 특화(BLUE), 대학 역량 강화 전략(RIBBON)을 기반으로 ‘생각하는 힘을 가진 창조적 인재를 육성하고 미래를 선도하는 리더십 대학’을 만들겠다는 뜻이다.
그 대표적 사례의 하나가 창업을 하거나 기업가 정신을 발휘해 혁신적 사고로 신제품을 개발하는 졸업생을 배출하는 창구역할을 할 ‘앙트러프러너십’ 전공 개설이다. 여성이 창의적 리더십으로 재계에서 활약하는 이른바, 새로운 위미노믹스(womenomics) 모델을 그려가고 있다.
교육과 학제, 학사지원 방식도 탈바꿈했다. 특히 국제교류를 확대한 글로벌 특화프로그램(SSAP), 오픈지식플랫폼 숙명지식공유시스템(SNOW) 운영 등은 지난해 학계에서 각종 대상을 휩쓸며 가장 주목받은 교육역랑강화 사업으로 꼽혔다.
지난해 9월 우리나라 최초의 여대 학생군사교육단(ROTC) 운영대학으로 선정된 것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이뤄낸 결실이다. 당시 숙명여대는 이화여대와 서울여대, 성신여대 등 4년제 여대 6곳과 경쟁을 벌였다. 접전이 될 것이란 예상을 깨고 만장일치로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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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경기 성남시 학생중앙군사학교에서 3주간 진행된 기초군사훈련에서 숙명여대 ROTC 후보생들이 총검술을 하고 있다. |
여기에는 1906년 명신(明新)여학교로 출발해 ‘여성교육 구국’이란 창학 이념으로 수많은 여성지도자를 양성해온 전통과 여성장교 육성에 매진한 숙대의 지속적인 노력이 크게 작용했다. 10년 전부터 육군사관학교와 안보토론회를 공동 주관해온 숙대는 6년 전부터는 여군장교 준비 동아리를 만들고 지원해 여러 명의 장교를 배출하기도 했다.
숙명여대가 추구하는 여군장교상은 두 가지다. 먼저 여성 특유의 섬세함이 극대화될 수 있는 분야에서의 업무능력이다. 현재 여군장교들은 신체적 제한으로 전투병과에 배치되지 못하고 간호·행정·통신병과에서 주로 근무한다. 그러나 현대전은 재래식 전력과 함께 기술을 앞세운 전자전의 시대란 게 숙명여대의 생각이다. 여성장교들의 꼼꼼하고 섬세한 능력이 제대로 발휘된다면 지금까지 발을 들여놓지 못하던 작전·정보 분야에서도 여성들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성들의 대화방식도 부드러운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핵심요소다. 여성들이 좀 더 유연한 사고로 군 구성원들과 소통함으로써 새로운 시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숙명여대 관계자는 “최초의 여성 ROTC 운영대학 선정은 단순히 여성 군인 몇명을 배출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며 “글로벌 안보리더를 육성하고 숙명여대의 창립정신인 ‘애국애족’을 실천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인터뷰_ 한영실 숙명여대 총장
“후보생 임관 제대 후에도 지속적인 관리 지원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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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숙명여대 ROTC 후보생들의 기초군사훈련 과정을 찾은 한영실 총장이 후보생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한영실 숙명여대 총장은 ‘뼛속까지 숙명인’이다. 숙명여대 식품영양학과를 나와 동 대학원에서 석사, 박사학위를 받고 1997년 숙명여대 교수로 부임한 후 한국음식연구원장·사무처장·교무처장 등 주요보직을 두루 거쳐 2008년 제17대 총장으로 선출됐기 때문이다. 2005년 한국방송 교양프로그램인 비타민의 ‘위대한 밥상’ 코너 출연으로도 유명하다.
한 총장은 2008년 취임 당시 ‘축구하고 군대 가는 여대생 상’을 제시했다. 숙명여대가 첫 여성 ROTC를 배출하면서 2년여만에 이를 실현한 셈이 됐다.
한 총장은 “대다수의 전후세대는 분단국가에 살면서도 국가안보에 대한 감각이 없다”며 “젊은 세대가 투철한 국가 안보의식과 국방에 대한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숙명여대가 여성 ROTC 운영대학으로 선정되기 전 준비기간이 워낙 짧아 걱정도 많았다. 한 총장은 “규격에 맞는 전용 공간 확보, 안보학 과목 개설과 두 명의 교수 채용, 후보생의 지도를 맡을 예비역 교관·행정관 채용 등 너무 많은 준비가 필요했다”며 “그래서 공고를 보자마자 직접 위원장을 맡고 모든 학교 구성원이 힘을 모을 수 있도록 추진단을 구성해 사업을 진행했다”고 말했다.
이후 한 총장은 추진단을 중심으로 사업계획서를 작성하고 실사에 대비하면서 빠르고 효율적으로 유치를 추진했다. 그는 “본격적인 실사를 앞두고는 다들 군인정신으로 무장한 것처럼 오후에 업무지시를 하면 퇴근 전 완료했다는 보고를 받을 정도로 학교 전체가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며 “의견이 추진단으로 모아져 실무진에서 추진할 때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접목되었던 적도 여러 번 있었는데, 이때는 숙명의 힘을 새삼 느꼈다”고 전했다.
한 총장은 학군단 유치를 준비할 때부터 명실공히 최고의 학군단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여러 측면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현재 후보생들은 전원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학교 인근 효창운동장을 체력단련 장소로 활용하고 있다. 용인에 있는 숙명여대 연수원도 유격훈련과 군사훈련이 가능하도록 시설 투자를 할 예정이다.
한 총장은 후보생 모두에게 장학금과 해외탐방기회를 제공하고, ROTC 지원을 원하는 고등학생을 위해 주니어ROTC제도도 운영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후보생들은 이번 학기가 끝나면 여름방학을 이용해 미국 산호세 대학으로 어학연수를 간다.
한 총장은 후보생들이 임관한 후에도 지속적으로 개인 역량을 강화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ROTC 출신 동문이 대학원에 진학하면 장학금을 지급하고, 제대 후 전직을 원할 경우에는 창업전문 지원기관인 교내 ‘앙트러프러너십 센터’ 등을 통해 전직을 지원할 생각이다.
한 총장은 “안보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우리나라 국민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인데도 남성만의 전유물로 비쳐지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며 “여성 ROTC제도로 여대 안에 일부 남아 있는 ‘안보 불감증’을 개선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혹독한 훈련에 뼛속까지 ‘군기’
숙명여대 첫 여성 ROTC 숙명여대 김희연 후보생
“학기 시작 3개월이 지났는데도 단복 차림으로 수업을 받거나 캠퍼스를 걸어갈 때면 여전히 신기하게 바라보는 학우들이 많습니다. 첫 여성 ROTC로서 행동과 마음을 다잡는 계기로 삼고 있습니다” 숙명여대 학생군사교육단(ROTC) 김희연(국어국문학 3년) 후보생은 우리나라 첫 여성 ROTC 가운데 한명이다. 검은 베레모에 흰색 반소매 셔츠, 군청색 바지의 단복 차림으로 검정색 학군단가방을 들고 교문 앞에 반듯하게 서 있는 김 후보생은 학생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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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꿈은 “신뢰받는 여성장교”
숙명여대 51기 ROTC 후보생은 29명. 이들은 지난해 11월 4.5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우리나라 첫 여성 ROTC에 이름을 올렸다.
학교 측의 지원으로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하는 숙대 후보생들은 매일 아침 6시45분 교내 ‘소연병장’에 집합한다. 담당 훈육관의 인원점검 후 기숙사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체력단련을 위해 인근 효창운동장으로 이동한다.
체력단련 종목은 뜀걸음과 스트레칭, 윗몸일으키기, 팔굽혀펴기. “지난해 말 후보생 선발 체력측정 때는 1~2개 하기도 어려웠는데, 이제는 2분 안에 윗몸일으키기 66회, 팔굽혀펴기 30회를 합니다” 김 후보생은 꾸준한 운동으로 군살이 빠져 단복이 더 잘 어울리게 됐다며 환하게 웃었다.
체력단련을 마치면 어느덧 8시. 후보생들은 수업을 듣기 위한 준비를 한다. 군사학 수업이 있는 화요일과 금요일은 단복을 입어야 하기 때문에 다른 날보다 더 신경을 쓴다. 후보생들은 필수과목인 군사학 외에도 국가안보론, 북한학, 전쟁사 등 관련 교양을 듣는다.
“평소 접하기 어려운 군사 관련 수업을 들으면서 정보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됐습니다. 2013년 2월 장교 임관까지 2년 가까이 남았는데, 열심히 해서 부끄럽지 않은 후보생이 돼야죠”
3개월여 간의 ROTC 생활은 후보생들의 체력은 물론 마음도 단련시키고 있다. 후보생은 학업과 군사교육을 병행하고 있다. 그래서 스스로 원칙을 세우고 주어진 시간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체득해야 한다. 체력단련과 학업을 비롯해 세간의 주목을 받는 다양한 행사를 소화해야 하는 숙대 후보생들은 자기만의 방법으로 시간관리를 하고 있다.
김 후보생은 “지난해 1년 휴학으로 학교생활과 다소 멀어진 상태에서 복학 전 훈련 등으로 학기가 시작됐을 때 학생과 후보생 간 균형을 잡기가 힘들었다”며 “일반 학생 때와 달리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고 장교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으면서 자신감을 얻고 있다”고 전했다. -
가장 좋아하는 옷은 단복
숙대 후보생들은 지난 1월 경기도 성남시 학생중앙군사학교에서 3주간 기초군사훈련을 받았다. 다른 학교 51기 ROTC 후보생들과 함께 한 훈련은 남자 후보생 20명에 여자 후보생 1~2명이 배치된 소대별로 남녀 구분 없이 동일하게 제식, 구급법, 총검술, 사격술, 행군을 했다.
중·고등학생 때 잠깐 배운 ‘좌향좌, 우향우’가 전부였던 여자 후보생들에게 생전 처음 들어보는 총으로 하는 제식과 사격 훈련은 생소할 수밖에 없었다. 걱정이 앞섰던 것도 사실이다. 당시 첫 여 후보생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부담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후보생들은 ‘부끄럽지 않게 훈련을 마치겠다’는 의지로 모든 부담을 털어냈다. 기록사격에서 10발을 모두 과녁에 맞춘 후보생도 나왔다. 30km 주간행군에서는 겨울철 길이 미끄러워 넘어지기도 했지만 무리 없이 남자 후보생들과 동일하게 훈련을 마쳤다. 오랜 합숙 생활도 역할을 분담하고 효율적으로 일을 처리해 갈등 없이 보냈다.
“훈련을 마쳤을 때 같은 소대 남자 후보생들이 ‘열심히 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잘 했다’고 말하더군요. 열심히 하는 모습을 인정받았다는 것이 자랑스러웠습니다. 훈련을 마친 숙대 동기들과 학교에서 해단식을 했을 때는 그냥 일과인 것 같고, 내일 아침 또 만날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훈련을 무사히 마쳤다는 뿌듯함으로 서로를 격려했습니다”
김 후보생은 해단식 후 피곤한 몸으로 집에 돌아갔지만, 가족들에게 훈련받은 일들을 이야기 하느라 거의 밤을 새웠다며 웃었다.
숙대 후보생들의 경례동작은 이제 멋스러워졌다. 지난해 12월 창단식에서 단복을 처음 입었을 때의 어색함도 사라졌다. 그만큼 장교 후보로서의 품위도 더해가고 있다. 곧 후배도 받는다. 52기로 들어올 두 번째 후보생들은 체력검정까지 마치고 현재 합격통보를 기다리고 있다.
김 후보생은 “장교는 병사와 국민에게 신뢰를 주는 모습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에 첫 여성 후보생으로서 군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쌓는데 도움이 되고 싶다”며 “스스로 자랑스런 선배가 될 테니 앞으로 들어올 후배들도 자신이 선택한 길인만큼 최선을 다하겠다는 각오로 임해주길 바란다”는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뉴스룸 = 이진욱 기자 jinuk@segye.com
- 기사입력 2011.06.06 (월) 12:40, 최종수정 2011.06.08 (수)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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