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세계] 지난 20년간 약 1700회, 9500여 시간을 장애우 봉사 활동으로 보낸 이향희(54ㆍ서울 구의동)씨를 두고 주변에서는 ‘천사’라고 부른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쑥스럽고 부끄러워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죠. 사람들이 말하는 ‘좋은 일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좋은 일도’ 하는 사람이고 싶어요”
그녀에게 봉사는 대단한 것이 아니다.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 가진 돈이나 시간, 힘과 기술을 나누는 간단한 것이다. 그래서 이씨의 봉사는 더욱 큰 가치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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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간 장애우들 손발 되어준 천사
작은 나눔도 장애우들에겐 큰 도움
이향희씨는 지난 20여년 간 (사)부름의전화에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장애우들을 돕고 있다. 30대 중반에 활동을 시작해 지금은 50대 중반에 다다랐다. “주로 시각장애우들로부터 전화가 많이 옵니다. 장애가 없는 사람들에게 장보는 일이나 병원진료를 받으러 가는 길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깟 장보는 일이 무슨 봉사활동이야’라고 말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누군가에겐 정말 필요한 도움이죠”
이씨가 도움을 바라는 장애우들을 찾아가 하는 일은 간단하다. 시장에 함께 나가 배추와 파, 양념을 산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함께 채소를 다듬고 양념을 해 김치를 담근다. “함께 장을 보며 바람을 쐬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장애우들에게 큰 기쁨이죠. 봉사는 장애우들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죠.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일이 봉사죠”
그녀가 중학생일 당시 함께 살던 할머니는 백내장으로 실명해 바깥출입을 홀로 못하는 상태였다. 지금의 부름의전화 활동이 일상이 된 것도 당시의 경험이 보탬이 됐다. “결혼 후 시어머님이 전신마비로 손가락 하나 까딱 못하신 채 10년을 누워 계셨죠. 그분 옆에서 식사와 배변을 돕고 말벗으로 남아 있었던 것도 특별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옆에 있으면 도와야죠” ‘지금’ 다른 사람을 위해 ‘여기서’ 할 수 있는 것을 찾는 것. 이 같은 봉사철학이 있었기에 이씨는 20년 간 봉사활동을 이어올 수 있었다.
장애우도 여행·산행·운동 등 취미생활을 하고 싶은 욕구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 무보수 자원봉사자들의 경우 생업에 종사하며 시간을 내어 활동하다 보니 인력이 부족하다. 병원진료나 민원업무, 시장보기 등 일상생활에서 꼭 필요한 일에 투입될 수밖에 없는 점에 이씨는 아쉬움을 나타낸다.
“지금은 지역마다 복지관이 생기고 1급 장애우의 경우 활동도우미제도가 생겨 부름의전화는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일을 돕고 있죠. 하지만 아무리 좋은 제도가 생겨도 사각지대는 있기 마련입니다. 장애인우들의 요구를 들어주기에는 아직도 턱없이 부족한 현실이죠. 여전히 자원봉사자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그녀가 무엇보다 다행스럽게 생각하는 점은 장애우들을 배려하는 시설 등 환경이 개선된 점이다. 이씨가 처음 봉사를 시작할 때만 해도 휠체어 사용 장애인과 외출할 때면 인도와 차도 사이에 턱이 많아 걷기조차 힘들었다. 전철을 이용할 때 계단을 오르내리려면 장정 네명이 휠체어를 들고 계단을 오르내려야 했고, 버스 탈 때는 자원봉사자가 장애인을 업어 버스에 먼저 태우고 다시 내려와 휠체어를 접어야 했다.
“지금은 계단 대신 경사로를 만들고 인도와 차도 사이 턱을 없애고 있죠. 지하철역에는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된 곳이 많아 이용하기가 편리합니다. 장애우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긍정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해 마냥 기분이 좋아집니다”
하지만 이씨는 현재 학생이나 직장인들이 봉사할 수 있는 프로그램 마련이 미흡한 점에는 목소리를 높인다. “학생이나 직장인은 방학이나 휴일밖에 시간이 없어 마땅히 봉사할 곳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학생들은 산이나 길에서 쓰레기 줍는 일로 봉사시간을 채우기도 하죠. 학교나 기관에서 무조건 봉사시간을 부여하지 말고 그들의 힘과 시간이 효율적으로 투입될 수 있는 봉사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일이 급선무입니다”
그녀가 봉사활동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에게 항상 당부하는 말이 있다. “내 가정을 소중히 생각하고 처음부터 무리하지 말아야 오랜 시간 봉사를 할 수 있습니다. 가족들과 함께 하면 더욱 좋지만 봉사를 강요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봉사는 자발적으로 할 때 상대에게 다가갈 수 있으니까요” 봉사활동의 생활화. 그녀가 꿈꾸는 작지만 소중한 희망이다.
로컬광명 = 이상영 기자 lsy1337@segye.com
- 기사입력 2010.10.25 (월)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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