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산사의 서정
이승민 대기자
happydoors1@gmail.com | 2026-01-30 13:24:03
겨울 산사의 서정
이승민
겨울 하늘은 솜이불이 되어 연못 위에 내려앉고
평온한 눈 마당은 설광으로 단장을 시키는데
나는 연지를 걸어 잃어버린 나를 찾아 나선다
저 화려한 수레를 타고 온 계절의 소란함이
범종각 그늘 아래 침묵으로 잠이 드는 풍경 속에서
나는 사라진 빛깔을 붙잡으려 애를 쓰고
스님은 인연 따라 왔다 가는 공으로 보네
색이 곧 공이요, 공 또한 색이니
보이는 눈 풍경이 비어 있고, 비어 있는 마음이 곧 설경이라
스님과 마주 앉아 무언의 온기를 나누는 시간
매화차 한 잔 차담을 나누는 창문 너머
산 끝에선 산새들이 보금자리를 찾아 깃들고
세월의 무게만큼 노송은 하얀 설화를 이고 서서
생과 사가 본래 둘이 아님을 몸으로 설하고 있는데
기왓장에 쌓인 이름자 하나가 지는 햇살을 정답게 붙잡는다
서두르던 한 시대가 소리 없이 저물어가는 시간
스님이 새벽마다 빗질한 마당 위로 다시 눈이 쌓이고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오직 무심의 설원
좋고 싫음을 고르는 그 한 생각이 집착임을 깨닫고 보니
닿는 곳마다 걸림이 없어 고해를 건너는 배는 오직 비어 있음뿐이라
물을 뚫는 달빛은 비어 있어도 보이고
무심은 만상을 비추어도 언제나 비어 있듯
한 생각 일지 않으면 비로소 우주 전체가 드러나네
삶이란 텅 빈 화폭 위에 잠시 머무는 무늬일 뿐
진정한 아름다움은 선과 색이 일치하는 완벽함에 있지 않았네
삶의 흔적들조차 본래 자리를 떠난 적 없는 여여한 진실
비로소 그 안에 나의 상(相)마저 흔적 없구나
얻을 것도 잃을 것도 없는 본래의 자리
두려움도 걸림도 없는 그 마음이 곧 깨달음의 고향
비어 있기에 온 세상을 포근히 품는 무심
부서지고 어긋난 자리마다 마음의 온기는 머물고
그 온기마저 흩어져 본연의 자리로 돌아간다
생각의 잔을 비워 본래의 얼굴을 마주하는 고요한 시간,
가고 가고 또 넘어가, 마침내 도달한 고요한 저 언덕
그 텅 빈 곳에 머무는 스님의 미소야말로
이 겨울 산사가 들려주는 지극한 무심의 노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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