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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우 행정학박사(지적학전공)/작가 |
이미 3세손이 3명으로 밝혀졌는데 5세손 10명을 모두 더하면, 밝히지 못한 2세손을 위해서 7명의 왕 재위 연수를 합산하는 것이니 무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전회에서 고구려 역사 삭감을 위해 고구려 건국 연도를 늦추기 위해서 '삼국사기'에 누락시킨 마지막 왕이 태조대왕과 혼합된 국조왕이라는 것을 밝혔다.
어느 왕조든 왕권이 견고하게 확립되기 전까지는 왕족을 둘러싸고 형성된 세력 사이에서 권력다툼이 일어나고, 그로 인해서 왕좌가 변하기도 한다. 고구려 역시 5대로 기록된 모본왕의 재위는 겨우 6년이고, 그나마 살해당했다. 그것도 아버지 대무신왕으로부터 직접 왕위를 물려받지 못하고, 삼촌인 민중왕이 대무신왕의 뒤를 이어 5년 동안 집권하다가 민중왕이 죽으면서 어렵게 물려받은 것인데도 6년 만에 살해당했으니, 왕위가 불안한 자리였다.
그러나 6대로 기록된 태조대왕 이후에는 비교적 안정되게 승계됐다. 하지만 단순히 왕위 승계가 안정됐다는 이유만으로 건국 연도를 삭감하기 위해서 누락시킨 마지막 왕이 태조대왕과 혼합된 국조왕이라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 큰 이유는 태조대왕이 7세에 즉위하여 100세까지 94년간 재위하고 119세에 사망했다는 기록 때문이다. 왕좌의 승계가 혼란하던 건국 초기에는, 왕을 누락시키고 업적을 전후의 왕과 혼합하여 건국 연도를 늦추기가 상대적으로 쉬웠으나 왕위 승계가 안정된 태조대왕 이후에는 힘들었을 것이다.
따라서 태조대왕이 신대왕에게 양위한 시점부터는 재위에 관한 기사를 정상적으로 기록하기 위해서, 김부식은 태조대왕과 혼합 기록한 국조왕과 미처 정리 못 한 그 전 왕들의 업적 등을 포함하여 정리하는 바람에 태조대왕의 재위가 길어졌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삼국사기'에서 누락시킨 왕들은 세손에 얽매일 것이 아니라 유류・여률・막래・애루・국조왕 5명으로 보고, 유리왕부터 5명 왕의 재위 연수를 합산해서 삭감된 연도를 추정하는 방법이 옳다는 논리다.
전술한 논리에 의해서 계산하면 유리왕에서 태조대왕까지 5명 왕의 재위 연수는 삭감되었다고 추정할 수 있는 165년이다. 기원전 37년에 165년을 더하면 기원전 202년이고, 고기(古記)들이 일률적으로 고구려 건국 연도가 갑신년이라고 하였으므로, 추정된 연도에서 가장 가까운 갑신년을 찾으면 기원전 217년이다.
이것은 '삼국사기'에서 고구려가 진(기원전 221~기원전 206년)・한(기원전 202년~220년)의 동북 모퉁이에 있었다는 기록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된다. 만일 손영종의 주장대로 기원전 277년에 고구려가 건국되었다면 고구려가 연・진・한나라의 동북쪽 모퉁이에 자리 잡고 있었다고 했어야 옳다. 손영종은 같은 논문에 연나라가 기원전 222년에 멸망해서 기원전 221년부터는 진나라가 고조선과 국경을 접했다고 적고 있으면서도 오류를 범한 것이다.
또한 고구려 건국 연도의 비정(批正)에서 중요한 것은, 전쟁을 일으키기 위해서 상대방을 면밀하게 연구했을 당나라 시어사 가언충이 당 고종에게 보고함으로써 그 신빙성을 더하는, 고구려가 건국한 후 900년에 멸망한다는 ‘유국 900년 설’이다. 기원전 217년을 고구려의 건국 연도로 재설정하면, 보장왕이 당나라에 항복한 668년까지는 885년, 보장왕이 고구려를 잃고 재건을 꿈꾸다가 죽음으로써 고구려 왕조가 완전히 막을 내린 682년까지는 899년이 된다. 이러한 기록 역시 기원전 217년이 고구려 건국 연도임을 뒷받침해주는 것이다.
깨진 유물을 발굴해서 그 조각을 맞춰보면 유물이 원형 항아리임이 분명한데도, 작은 쪽이 두어 개 없어서 완성된 모습으로 만들 수 없는 경우에는 주변의 모양과 어우러지게 석고 등으로 때워서 완성하는 융통성을 발휘하는 것이 당연한 조처다. 고구려 건국 연도가 늦춰지는 바람에 '삼국사기' 등의 사건 기록 연도가 서로 얽히는 등 모순을 드러내고 있으니, 바로 잡을 근거가 있다면 바로 잡는 것이 옳다.
고구려 건국 연도는 갑신년이라는 확실한 기록이 있다. 그 갑신년을 추정할 수 있는 근거가 합당하고 추론에 무리가 없다면, 건국 연도 재정립에 망설일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필자는 고구려 건국 연도를 바로 잡기 위해서 세손 삭감에 대한 추론의 논리를 세워 고구려 건국 연도는 기원전 217년이라고 도출해 냈다. 그리고 '삼국사기'에도 고구려는 진(기원전 221~206년)・한(기원전 202년~220년)의 동북 모퉁이에 있었다고 했으니, 기원전 221년에서 기원전 206년 사이에는 건국되었어야 한다.
또한 전쟁을 위해서 고구려를 충분히 연구하고 파악했을 당나라 장수가 임금에게 보고한 유국900년 설에 의하면, 고구려가 멸망하던 668년은 건국한지 900년이라고 했다. 적어도 850년 이상 900년은 되었다는 말이다. 이러한 조건을 모두 충족시킨 갑신년은 기원전 217년이라는 것을 이미 밝혔다. 따라서 고구려 건국 연도를 기원전 217년으로 비정(批正)하여 재정립한다. (다음 호에 계속)
신용우 행정학박사(지적학전공)/작가/칼럼니스트/영토론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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