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간도에 관한 관심이 증가하며, 인터넷을 검색하면 [그림 1]과 유사한 간도 지도도 있고 전혀 다른 영역의 지도도 있다. 역사 자료 지도는 일정한 세력이 그 시대에 차지한 영토를 통해 세력 판도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지만, 제작자 주관에 의해 왜곡되는 단점도 있다. 따라서 정확한 자료를 근거로 보편 학설에 따라 객관적으로 제작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원칙에 의해서, 지도의 진위를 판단할 때는 제작 근거와 제작 당시의 기술적 문제가 중요하다. 그렇다고 자료를 주고 AI가 제작하게 하면 AI가 자료를 선별해서 활용하는 활용 범위에 따라서 지도가 달라질 수 있기에 옳지 않고, 기본 근거가 되는 사료의 지도를 확보한 후 응용하기에 합당한 프로그램을 활용하여 사람이 직접 제작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따라서 정확한 역사적 근거를 바탕으로 최신 융합 프로그램을 활용해서 확실하게 제작한 필자의 지도에 대해서 필자는 자부심을 갖는다. 아울러 한가지 부언할 것은, [그림 1]에서 동간도와 북간도 위치가 서로 바뀌어야 한다는 일부 주장도 있다. 서간도 옆에 동간도가 있고 그 북쪽에 북간도가 있어야 한다는 의견인데, 그건 절대 아니라는 기록을 그 시대를 살던 두 분의 선조께서 남겨주셨다. 첫째는 시인 윤동주의 시 ‘별헤는 밤’에서 시인은 ‘어머님, 당신을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라고 읊었는데, 그 당시 시인의 집은 용정이었고 용정은 [그림 1]의 북간도에 속한다.
둘째는 민족 사학자로 독립운동가인 단재 신채호가 1921년 북경에서 발행한 한문체잡지 '천고(天鼓)' 제1호의 「군정서에서 포고한 전황-북간도에서 온 편지-」에서 ‘연변 일대의 전투 상황을 널리 알린바에 의거한다’고 했고, 「북간도 전란휘보-북간도의 한당(韓黨)과 일본군의 대격전-」에서는 청산리와 화룡현의 전투에 관한 소식을 전한다. 그런데 단재가 북간도라고 명기한 이 지명들이 모두 [그림1]의 북간도에 속한다. 따라서 북간도와 동간도 위치는 [그림 1]의 표기가 옳다. 또한 본 칼럼 제2회에 수록한, 1908년에 편찬한 현공렴의 대한제국 전도에도 북간도의 위치가 [그림 1]과 같은 위치에 뚜렷하게 표시된 것을 보아도 [그림 1]의 표기가 옳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림2]는 만주국 내에서 각각의 간도와 북방 고토가 차지하는 면적 비율을 산출하여, 이미 도출된 만주국 영토 면적을 활용하여 간도 면적을 산출하기 위해서 만주에서 연해주를 제외하고 만주국 영역만 별도로 표기한 지도다. 만주국 면적은 학자에 따라서 1,191,081㎢, 혹은 약 130만㎢라고도 하지만, 필자는 1,133,437㎢라고 알려진 학설에 동의한다.
[그림 2]의 만주국 면적은 이미 정해져 있으니, 그 안에 있는 동·서·북간도와 심요지역 및 북방고토의 면적 비율을 산출하면 각각의 면적을 도출할 수 있다. 챗GPT 5.6 sol 모델을 활용하여 산출한 결과, 필자가 면적 비례로 산출한 값과 유사하였다. 북방고토지역 약 72.6%(약 822,875㎢), 동간도 약 9.9%(약 112,210㎢), 북간도 약 3.2%(약 36,270㎢), 서간 약 7.3%(약 82,741㎢), 심요지역 약 7.0%(약 79,341㎢)로 만주국 내의 간도지역 합계는 만주국 면적의 27.4%인 약 310,562㎢다. 여기에 연해주 면적 165,900㎢를 합하면 간도 면적은 약 476,462㎢로 한반도 면적 223,663㎢의 약 2.1배, 약 100,000㎢인 남한 면적의 4.8배 정도이며, 만주 전체 면적 1,293,341㎢의 약 36%에 해당한다. 이 면적은 산출 근거로 삼은 지도가 등적도법이나 실측 축척에 기초한 GIS 지도가 아니고 필자가 역사적 자료를 기초로 컴퓨터 프로그램을 활용해서 작성한 평면 지도로, 실제 지표 면적 비율이 아니라 도상 면적 비율을 근거로 산출하였지만 실제 측량 값과 근접한 면적이라는 견해다.
[그림 2]에서 주지할 사항은, 일제는 만주국 건국을 지원할 때 국제적 시빗거리를 제공하지 않기 위해서 세밀하게 조사하여, 대대로 우리 한민족이 지배하고 우리 한민족 이외에는 유일하게 청나라의 만주족이 잠시 지배했던 영토라는 것을 확신하는 영역 내에 만주국을 건국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대한제국과 청나라 외에는 그 누구도 만주에 대한 영토권을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일제가 식민 통치하는 대한제국이 대대로 통치하고 생활하던 영토 범위 안에서 청나라 마지막 황제인 푸이를 내세워 만주국을 건국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만주국 건국을 적극 지원한 일본은 물론 한족 중국 역시 만주가 우리 한민족의 영토라는 것을 인정하였기에 만주국 건국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던 것으로, 한족 중국은 그런 사실을 덮기 위해서 청나라 역사를 한족 중국 역사로 날조하여 왜곡하는 것이다. (다음 회에 계속)
신용우 행정학박사(지적학전공)/작가/칼럼니스트/영토론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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