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 Cho Ph.D.
IUKFPR Chairman
“악법도 법이다.” 흔히 소크라테스가 억울하게 사형을 당하며 남긴 말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이 말은 1928년부터 경성제국대학 법학 교수로 재직했던 오다카 도모오(尾高朝雄)가 나치 독일의 지배를 정당화했던 ‘법실증주의’ 이론을 바탕으로 일제의 식민 지배를 옹호하기 위해 만들어낸 논리에 불과하다.
법실증주의란 법에서 도덕과 정의라는 주관적 가치를 철저히 배제하고, 오직 ‘문자로 기록된 법’ 자체만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법치주의를 말한다. 이 관점에서는 기독교 신앙이나 도덕에 기초한 ‘자연법’은 미신으로 취급된다. 모든 법의 영역은 도덕적 평가로부터 독립되어야 하기에, 법실증주의에 따르면 악법도 엄연한 법이다. 이를 실증적이고 과학적으로 해석한 판결은 절대적인 권위를 갖게 된다. 이것이 바로 나치 독일과 일제가 정당화했던 ‘형식적 법치주의’의 본질이다.
전후 독일은 나치 체제에 대한 뼈저린 반성을 통해 이러한 형식적 법치주의를 배척했다. 그 과정에서 인간의 존엄성, 실질적 법치주의, 그리고 자유민주적 헌법 질서가 구축되었다. 여기서 실질적 법치주의란 ‘법의 지배(rule of law)’를 의미한다. 이는 “국왕도 법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는 영국 법이론에 뿌리를 둔 것으로, 의회가 제정한 법이라 할지라도 인권을 침해하거나 헌법을 위반한다면 진정한 법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원칙이다. 독일이 헌법재판소 제도를 확립한 근본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으며, 모든 법은 반드시 ‘적법절차(due process of law)’를 준수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게 되었다.
전후 독일의 유명한 법철학자 구스타프 라드브루흐(Gustav Radbruch)는 나치에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던 과거를 공개적으로 반성했다. 그리고 ‘라드브루흐 공식(Radbruch Formula)’을 주창했다. 그는 실정법이 정의를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위반할 경우, 법적 안정성보다 정의가 우선시되어야 한다며 자연법의 우위성을 거듭 강조했다.
반면, 전후 일본의 오다카 도모오는 식민 지배를 찬양하고 청년들에게 전쟁 참여를 독려했던 과거에 대해 아무런 반성도 하지 않았다. 해방 이후에도 그의 법실증주의 논리는 그대로 한국에서 적용되었다. 그의 제자들을 통해 오늘날 우리 사법부에 깊이 뿌리박히게 되었다.
최근 시국에서 사법부가 보여준 행태와 판결은 이러한 법실증주의적 경향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정의와 도덕에 대한 고민은 찾아볼 수 없고, 오직 법 규범 자체에만 집착하며 “정의롭지 못한 판결(악법)도 법이다”라는 민낯을 주권자 앞에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미국의 법학자 론 풀러(Lon Fuller)는 ‘법의 내면적 도덕성’을 강조하며, 사회적 규칙이 ‘법’으로서 자격을 갖추기 위해 필요한 8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① 특정 개인이 아닌 대중에게 널리 적용되어야 함(일반성). ②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공표되어야 함(공포). ③ 과거의 행위에 소급 적용되지 않아야 함(불소급). ④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명확해야 함(명확성). ⑤ 규칙들 사이에 모순이 없어야 함(비모순). ⑥ 빈번하게 바뀌지 않고 안정적이어야 함(항상성). ⑦ 실제로 지킬 수 있는 것이어야 함(준수 가능성). ⑧ 공정 해석과 일치해야 함(일치성). 풀러는 이 중 단 하나라도 어긋난다면 그것은 법이 아니며, 시민은 이에 불복종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법실증주의자 하트(Herbert Hart)는 이에 반대하며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풀러의 주장은 우리에게 ‘저항권’과 ‘폭군방벌론(Monarchomachs)’을 떠올리게 한다. 군주(현대의 공직자)가 시민과의 계약을 깨고 폭군으로 변한다면, 시민은 그를 내쫓을 수 있다는 사상이다.
현대 민주주의에서 이 ‘폭군’은 대통령뿐만 아니라 국회의원, 판사, 검사 등을 모두 포함한다. 만약 판사의 판결이 정의롭지 못한다면, 주권자인 국민은 언제든 그를 심판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처럼 사법 질서가 위기에 처한 시기에는 법과 정의를 분리하는 실증주의적 해석에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 정의롭지 못한 판결을 내리는 이들에 대해 ‘폭군방벌’이라는 특별한 결단이 필요하다. 국민의 뜻을 읽지 못하는 사법부는 근본적으로 개혁되어야 한다. 정의를 저버린 재판은 결코 법, 즉 절대적 판결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조규상 법학 박사(IUKFPR Chair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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