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바라본 정치는 가치와 방향의 혼돈 속에 매몰되어 있다. 광장을 가득 메운 구호는 파상처럼 요란하지만, 그 물결 어디에서도 사람의 온기는 전해지지 않는다. 소리는 넘치되 숨결은 없고, 외침은 높되 삶의 무게는 닿지 않는다. 본래 정치는 민심의 부름에 응답하는 숭고한 소명이자,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자식들에게 물려주겠다는 부모 세대의 간절한 서약이어야 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마주한 정치의 풍경은 참담함을 넘어 비통하다.
민생이라는 허울 좋은 간판 아래 개인의 사욕이 주인 행세를 하고, 정치는 어느새 상대를 쓰러뜨리기 위한 비열한 하급 기술로 전락했다. 공익을 받들어야 할 권한은 정적을 향한 예리한 칼날이 되었고, 국민을 현혹하는 현란한 기만술은 진실을 난파시킨 채 소음의 벽만 높이고 있다. 정치가 국민의 근심을 덜어주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정치의 안위를 걱정해야 하는 이 기막힌 역전 현상 앞에 우리는 분노를 넘어 허탈감을 느낀다.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대들이 쟁취하려는 권력이 과연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함인가, 아니면 그대들의 성벽을 높이기 위함인가.
이제 정치는 거사무사(去私務公)의 대도로 돌아와야 한다. 사사로움을 버리고 공공의 의무에 매진하는 것은 정치의 선택사항이 아닌 실존적 근거다. 정치의 본질은 거창한 이데올로기나 영원한 권력에 있지 않다. 그것은 삶의 벼랑 끝에 선 국민의 손을 잡아주는 일이며, 부모 세대가 굽은 등으로 일궈낸 가치를 자식들이 희망으로 꽃피우게 돕는 조용하고도 장엄한 순리다. 위정자들에게 준엄하게 묻는다. 지금 그대들이 쥐고 있는 권력의 무게를 단 한 번이라도 정직하게 헤아려 보았는가. 그 권력은 당신들의 앞날에 비단길을 깔아주기 위해 허락된 전유물이 아니다. 새벽 공기를 가르며 일터로 향하는 가장의 거친 손마디와, 자녀의 미래를 걱정하며 밤잠을 설치는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 위에 위태롭게 올려진 엄중한 위탁물이다.
진정한 정치의 회복을 위해서는 세 가지 결단이 선행되어야 한다. 우선 혐오와 분열의 언어를 멈추고 정책의 언어를 회복해야 한다. 상대를 악으로 규정하는 정쟁의 기술이 아니라, 민생의 구체적인 고통을 해결하는 협치의 능력을 보여야 한다. 다음으로 선비적 염치를 복원해야 한다. 나의 고난으로 인해 다음 세대의 짐이 단 1그램이라도 가벼워질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는 책임감이 절실하다. 정치인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고귀한 훈장은 가슴에 단 금배지가 아니라, 국민의 굽은 등을 펴준 안도감의 무게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현장 중심의 입법으로 응답해야 한다. 식탁의 물가와 일자리의 불안을 실질적으로 해소하지 못하는 정치는 존재할 이유가 없다.
만약 사리사욕에 눈이 멀어 민심의 조수를 읽지 못한다면, 그 성난 파도는 결국 정치의 성벽을 넘어 국가의 근간마저 잠식할 것이다. 이제 정치는 가짜 눈물을 닦고 국민의 평범한 하루 속으로 돌아와야 한다. 정치인의 시선은 자신의 명예라는 허울이 아니라, 국민의 팍팍한 삶의 현장을 향해야 한다. 민심은 천심이다. 정치는 암탉이 병아리를 품듯 국민의 삶을 보듬는 성스러운 곳이지, 욕망들이 날뛰는 전쟁터가 아니다. 각 가정의 식탁에 불안이 아니라 평화가 오르게 하라. 분열의 독설을 멈추고 신뢰의 언어를 회복하라. 서로를 헐뜯는 기만의 시대를 끝내고, 진실과 염치에 기초한 정치로 환골탈태하라. 국민은 더 이상 그대들의 무능과 탐욕에 속지 않는다. 국민의 평범한 일상을 지켜내지 못하는 정치는 존재할 이유가 없다. 그것이 거사무사(去私務公)의 길을 걷는 위정자들에게 주어진 준엄한 소명이다.
박범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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