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악화로 온정 크게 줄어 어려운 이웃들 올 겨울 더 춥다
모금단체 투명성 확보가 우선…나눔문화 교육도 병행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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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9일 서울 중구 명동 예술극장 앞에서 구세군이 모금활동을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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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기부문화 정착은 어디까지 왔나. 우리나라 기부문화는 선진국에 비해 아직 걸음마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악화로 기부 발길까지 뚝 끊기면서 연말연시를 앞두고 모금단체들에는 비상이 걸렸다.
최근 통계청이 전국 13세 이상 3만8000여명을 대상으로 지난 1년간(2010년 7월15일부터 2011년 7월14일) 기부행태를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현금이나 물품 등을 기부한 경험이 있다’는 응답자는 36.4%였다. 1인당 평균 기부금은 16만7000원으로 국내총생산(GDP)의 1%에도 못 미치는 액수며 미국의 7분의 1 수준이다.
기부 이유는 ‘어려운 사람을 돕고 싶어서’가 43.3%로 가장 많았고 ‘기부단체나 직장의 요청’이 28.3%를 차지했다. 비자발적 기부가 4분의 1을 넘는 셈이다. 연령대별로는 30~40대의 절반 이상이 기부에 긍정적인 반면 60대 이상은 부정적 인식이 21.2%로 4명 중 1명꼴이었다.
전문가들은 기부를 연말 이벤트와 같은 시혜 차원에서 볼 게 아니라 사회 발전을 위한 상생 개념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기부가 왜 필요하고 어떻게 기부할 것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기부단체의 투명성 확보가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지난해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수년간 공금유용, 장부조작, 친인척 거래, 성금분실 등 각종 비리를 저지르다 적발됐다. 이는 비영리기관들이 투명하고 깨끗한 기부 문화 조성보다는 양적 성장만 추구해온 결과로 분석된다. 기부자들은 기관이나 시설의 투명성을 가장 중요한 기부의 조건으로 꼽는다.
각계 사회지도층의 솔선수범도 기부 확대에 긍정적 작용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통계청 조사에서 응답자의 54.8%는 기부문화 확산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으로 ‘사회 지도층과 부유층의 모범적 기부 증대’를 꼽았다.
정부와 지자체 차원의 대책마련도 과제다. 국민들이 일시적인 기부가 아닌 정기적으로 기부하도록 세제혜택 확대 등 방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개인기부 공제한도는 소득의 20% 수준으로 미국의 30∼50%, 한도에 제한이 없는 영국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이다.
작은 사랑이 모이면 세상이 행복해진다
서울 성동구 구립어린이집 어린이들이 지난 30일 성동구청 소회의실에서 1년간 불우이웃을 돕기 위해 돼지저금통에 모은 동전을 개봉하고 있다. 모아진 성금 1000여만원은 관내 불우이웃을 위해 사용될 예정이다. 기부는 국가 문화수준을 측정하는 척도다. 자발적 참여로 이뤄지는 기부는 성숙한 시민의식과 사회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기부문화는 계층 간 갈등을 해소하는 사회통합의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기부문화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음악 재능기부, 대학생 소년소녀가장 무료 과외 등 재능기부도 늘고 있다. 지자체들도 이웃돕기를 통해 기부문화 확산에 앞장서는 분위기다.
국내 기부는 양적으로 크게 성장하고 있다. 국내 기부 총액은 2001년 4조6700억원에서 지난해 10조원을 돌파했다. 10년 새 두배 이상 증가한 셈이다. 10여년 전만 해도 전체 기부액의 30%를 밑돌았던 개인 기부액이 최근 65%에 육박할 정도로 크게 늘어난 점은 기부문화 확산에 긍정적이다.
아직 해결해야할 과제가 많다. 전문가들은 기부를 장려하는 세금제도 개편, 공익재단의 투명성 강화, 기부문화에 대한 인식 개선, 부유층의 기부 활성화 등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먼저 기부단체의 투명성 확보가 시급하다. 복지단체 ‘아이들과 미래’는 2004년부터 윤리운영규정과 연간보고서, 외부감사 결과 등을 홈페이지에 공개해 투명성을 높였다. 투명성 확보는 기부금 증가로 돌아왔고 지원금이 꾸준히 늘고 있다.
지난해 비리가 적발된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쇄신안을 마련하고 성금 운영현황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다. 특히 5000원 이상의 모든 기부에 대해 기부금이 어디에 어떻게 쓰였는지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는 ‘기부정보확인서비스’를 도입했다.
사회지도층도 기부활동의 모범을 보여야 한다.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은 과거 약속했던 1조원 사회공헌을 최근 본격화했다. 이건희 삼성 회장과 삼성은 8000억원을 출연해 장학재단을 설립했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최근 1500억원 상당의 주식을 사회에 환원키로 해 기부에 대한 관심을 크게 증대시켰다.
2008년 출범한 아너소사이어티는 1억원 이상을 기부한 사람들의 모임이다. 이들은 특별한 혜택 없이도 큰 돈을 기부하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 차원의 대책마련도 과제다. 기부자에 대한 세제혜택 확대 등 방안이 필요하다. 정부는 최근 ‘나눔문화 활성화 방안’을 발표하고 기부금 중 일정액을 노후 연금식으로 지급하는 방안 등을 마련했다. 그러나 ‘좋은 일하면 기초생활을 보장하겠다’는 소극적 지원보다는 더 큰 혜택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어린이와 청소년에 대한 기부와 나눔교육도 필요하다. 미국과 영국 등 기부선진국들은 정규 교과과정 속에 기부와 자원봉사 등을 가르친다. 우리나라는 민간차원에서 모금기관들이 별도로 실시하는 상황이다.
지자체는 기부문화 확산 전진기지
지난해 11월27일 대전 중구 부사동에서 염홍철 시장 등이 복지만두레사업의 하나로 연탄배달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대전시는 복지만두레사업으로 주민자치센터와 의료기관·자원봉사단체·기업 등을 연계해 복지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지자체들도 기부문화 확산에 앞장서고 있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이웃돕기 기금을 마련하고 있다. 시민들이 쉽게 내놓을 수 있는 화분, 폐 휴대전화, 탄소포인트 등을 활용해 성금을 모으고 있다.
경기 화성시와 화성시새마을회(회장 박성권)는 최근 공무원과 사회단체, 시민들이 기부한 화분을 싸게 판매하는 ‘희망화분 나눔 바자회’를 열었다. 판매 수익금은 지역 홀몸노인들이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날 수 있도록 난방유, 전기장판 등을 지원하는 데 사용한다.
고양시는 사용하지 않는 휴대전화를 모아 불우이웃돕기 기금을 마련했다. 시는 4월부터 ‘범시민 폐 휴대전화 모으기’ 운동을 펼쳐 2만5100여개를 수거해 2700여만원을 모았다.
환경친화적인 방법으로 모금에 나선 지자체도 있다. 수원시는 전기, 수도, 도시가스 사용량을 절감해 받은 온실가스 감축실적인 ‘탄소포인트’를 성금으로 기부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탄소포인트제를 활용해 올 1월 포인트를 기부한 시민은 453명으로 모두 443만4000원의 성금이 모였다.
경남 창원시 공무원들은 신용카드 포인트를 모아 이웃을 돕고 있다. 시는 2009년부터 공무원과 금융기관 등이 참여하는 기부매칭 펀드방식의 모금활동을 진행해 지난 23일 현재 5229만원을 모았다.
서울 영등포구가 실시하는 ‘아름다운 이웃 서울 디딤돌사업’ 가입자는 600여곳에 이른다. 이들은 동네음식점부터 안경점, 병원, 학원까지 어려운 이웃에게 자신이 갖고 있는 재능과 서비스를 기부한다. 2008년부터 지금까지 디딤돌 사업 혜택을 본 구민들만 3900명이 넘는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4억6400만원을 기부 받은 셈이다.
재능기부’ 나의 장기로 이웃을 행복하게…
지난 25일 경남 밀양시 상동초등학교에서 열린 ‘상동 포크기타 어울림 한마당’ 행사에서 학생들이 기타연주를 하고 있다. 음악가 박용춘 씨는 재능기부로 학생과 학부모 등에게 기타를 가르치고 있다. 최근 재능기부가 늘고 있다. 재능기부는 노래, 건축, 그림 등 내가 가진 재능을 사회와 나누는 것이다.
기부 방법은 다양하다. 피아니스트 백건우 씨는 공연으로 연평도와 위도, 욕지도 주민을 위로했다. 가수 조용필 씨는 소록도 한센병 환우들을 만났다. 소설가 이외수 씨는 무료 문학강좌를 열고 있다.
지휘자 금난새 씨는 오케스트라 공연을, 건축가 윤충열 씨는 농어촌 노후주택 수리를 돕는다. 배우 최수종, 하희라 부부는 창덕궁의 다양한 볼거리와 이야기를 직접 녹음하는 목소리 재능기부에 나섰다.
가수 김현철 씨는 지난해 서울시와 함께한 ‘꿈, 날개를 달다’(이하 꿈, 날개) 프로젝트를 통해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기부했다. 그는 음원판매수익 전액을 저소득가구의 교육과 생활 안정자금으로 쓰이는 사랑 나눔에 기부했다.
이처럼 유명인들이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일반인들의 재능기부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재능기부는 유명인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마다 가진 재능이 다르기 때문에 나누겠다는 뜻만 있다면 누구나 가능하다.
광고인 이제석 씨는 ‘재능기부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광고와 관련된 재능을 기부하려는 사람들과 함께 공익광고를 만든다. 정재승 한국과학기술원 교수는 아이들에게 무료로 과학강연을 하고 있다.
경남 밀양에 사는 음악가 박용춘 씨는 전교생이 45명인 상동초등학교에서 ‘상동 하모니 기타교실’을 열고 학생·학부모·지역민 등에게 기타를 가르치고 있다.
한국기능연합회 1004지역사회봉사단은 최근 부산 감천2동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머리 염색과 커트, 전등 수리, 낡은 옹벽 정리 등 봉사활동을 했다.
농림수산식품부는 농어촌 발전 및 주민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할 만한 사람들을 모집하는 농어촌 재능기부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교육기부시민연대는 무료 공부방을 운영하고 있다.
선진국은 어떻게…기부=생활미국 = 기부문화가 가장 잘 정착된 나라다. 국민들은 기부를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특히 개인기부가 활발하다. 이는 전 재산의 95%를 사회에 환원한 카네기나 록펠러 등 부자들의 전통이 빌 게이츠, 워런버핏 등으로 그대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미국은 초등학교부터 기부를 경험한다. 초등학생들은 매년 학교에서 열리는 다양한 자선행사를 통해 기부의 개념을 깨우친다. 미국 학교의 복도에는 ‘셰어링 트리(sharing tree)’가 있다. 평소 자신이 쓰지 않는 물건과 카드를 함께 걸어두면 학교에서 물건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보내준다. 학생회는 통조림 음식이나 잘 쓰지 않는 동전을 모아 세계 아동구호단체에 보내기도 한다. 학생 스스로 남을 도울 수 있는 기회를 자주 가지도록 함으로써 기부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한다.
학교 발전기금도 미국에선 기부의 일종으로 여겨진다. 일방적인 모금 방식은 허용되지 않는다. 같은 지역의 학교들과 걷기대회를 열어 학부모들한테서 10∼20달러의 참가비를 받고 이 수익금을 학교 발전기금으로 쓴다.영국 = 가장 큰 특징은 기부방법이 많고 생활 속에서 이를 실천한다는 점이다.
영국 어느 지역에서든 ‘채러티숍’(기부가게)을 쉽게 볼 수 있다. 한국에서 운영되는 아름다운 가게처럼 기부자들이 물품을 기부하면 이를 판매한 수익금으로 자선사업을 한다. 영국 내 채러티숍은 7000개로 한해 수익만 1억7000만 파운드(약 3000억원)에 이른다. 한국에선 현재 110여개가 운영되고 있다. 1940년대부터 시작된 채러티숍은 320여 비영리단체들이 운영한다. 기부품은 옷이나 책에서 자전거, 컴퓨터, 안경, 각종 도구까지 다양하다.
영국에는 개인과 기업이 원하는 단체에 다양한 방법으로 기부할 수 있도록 관련 프로그램을 소개해 주는 단체도 있다. 자선원조재단은 기부자 8만명, 기업 3000여곳을 대상으로 재단에 등록된 비영리단체 26만여곳에 기부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개인에게는 정기 기부, 유산 기부, 자녀명의 기부 프로그램 등을, 기업에는 회사 성격에 따른 효율적인 기부방법, 다양한 세제혜택 등을 소개해 준다.
여행 온 외국인들도 기부에 참여할 수 있다. 여행지 입장권을 구입하면 출국시 공항에서 부가세를 환급받을 수 있는데 이 환급액을 기부단체에 기부할 수 있다. 관광객이 사용한 교통카드를 공항에 설치한 모금통에서 수거해 남은 잔액을 비영리기관에 기부하고 있다.일본 = 10년 전 일본은 전체 기부액에서 개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25%에 불과할 정도로 기부 후진국이었다. 이는 정부가 국민 복지를 책임지는 시스템이어서 사회기부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시민단체들이 각종 시상 제도를 만들고 캠페인을 벌이는 등 기부를 장려하고 나서면서 인식이 달라졌다. 시민단체는 어린이 교육을 통해 기부에 대한 인식 전환을 추진했다. 일례로 도쿄의 한 초등학교에선 5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연말에 카드를 발송할 때 우체국 협찬을 받아 ‘기부 포스터’ 카드를 제작한다. 이 카드를 발송하면 일정액의 기부금이 쌓이게 된다.
단체들은 학생들의 정서함양을 위해 기부참여를 선택했다. 기부는 남을 돕는 성취감과 리더십을 키울 수 있으며 사회참여를 이끌어낸다고 여긴다. 교육 영역에 침투해 기부문화를 활성화하는 전략이 주효해 부모 동참까지 이끌어냈다.
뉴스룸 = 박형재 기자 news34567@segye.com
기사입력 2011.12.02 (금) 15:23, 최종수정 2011.12.02 (금)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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