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집 안에서 아내의 한숨 소리가 부쩍 늘었다. 장가간 아들 녀석에게 섭섭한 마음이 들 때마다 내게 쏟아내는 불평에는 서운함과 원망이 가득하다. 어릴 적 온 정성을 다해 키워놓았더니, 가장 가까워야 할 부모는 뒷전이고 아내와 아이들, 처가 식구들만 챙기는 것 같다며 속상해한다. “아들이 변했다”, “결혼하더니 다른 사람이 됐다”며 서운해하는 아내를 바라보노라면, 자식을 향한 엄마의 깊은 애정과 함께 집안의 중간에서 겪는 묘한 쓸쓸함이 전해져 온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같은 남자의 입장에서 아들의 처지를 바라보게 된다. 아들은 지금껏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전혀 새로운 삶의 궤도에 들어섰다. 처음으로 남편이 되었고, 한 가정을 이끄는 가장이 되었으며, 아이가 태어나면 처음으로 아빠가 된다. 무엇 하나 익숙할 리 없는 ‘초보의 삶’이다. 겉으로는 태연해 보여도, 어떻게 가정을 지키고 미래를 준비해야 할지 마음속은 수많은 중압감과 고민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엄마 눈에는 아들의 모습이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으로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이기심이라기보다 책임감에서 비롯된 ‘서툶’일 가능성이 크다. 지금 아들에게 가장 가깝고 지켜야 할 존재는 아내와 자녀다. 자신에게 새롭게 부여된 울타리를 공고히 하기 위해 온 힘을 쏟고 있는 것일 뿐, 부모를 잊어서가 아니다. 변화된 아들의 모습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인생의 과정이다.
문득 나의 젊은 시절을 돌이켜본다. 나 역시 청춘일 때는 부모의 마음을 헤아릴 겨를도 없이 내 앞가림을 하느라 바빴다. 그때 나의 부모님 역시 나를 보며, 그리고 내 아내를 바라보며 서운한 마음을 감추셨을 것이다. 세월이 흘러 부모의 위치에 서고 보니 비로소 알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처한 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는 것을 말이다. 인생의 불확실함 속에서 자식 살림을 지키느라 애쓰는 아들을 단지 부모에게 소홀하다는 이유로 탓할 수는 없다.
“나를 덜 사랑해서가 아니라, 제 삶을 지키느라 애쓰는 중이구나.”
이렇게 마음을 바꿔 먹으면 서운함은 이내 안쓰러움으로 바뀐다. 이미 삶의 풍파를 경험해 본 부모라면, 아직 인생을 배워가는 자식에게 엄격한 잣대를 대기보다 조금 더 기다려주고 믿어주는 여유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아들은 변한 것이 아니라 짊어져야 할 책임의 무게가 커진 것뿐이다.
자식은 평생 부모의 품 안에 머물 수 없다. 언젠가는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야 하고, 그 길에서 넘어지거나 시행착오를 겪기도 한다. 이때 부모가 줄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은 자식을 다시 품 안으로 끌어당기는 것이 아니라, 한 걸음 물러서서 믿음의 눈으로 바라봐 주는 것이다.
나를 얼마나 자주 찾아오느냐보다 자기 가정을 얼마나 든든히 지켜가는가를 바라보는 것. 부모에게 얼마나 잘하느냐보다 좋은 남편, 좋은 아빠가 되어가는지를 응원해 주는 것. 그것이 부모가 자식에게 줄 수 있는 완성된 사랑 아닐까.
생각해 보면 부모도, 자식도 모두 이번 생이 처음이다. 처음 부모가 되었고, 처음 가장이 되었으니 서로에게 완벽함을 요구할 필요는 없다. 조금 서툴고 부족하더라도 서로를 이해하고 다독이는 것이 가족이다. 오늘 밤, 서운해하는 아내의 손을 따뜻이 잡아주며, 애쓰며 살아가는 아들에게 마음속으로 나지막이 응원을 건네본다.
“아들아, 네가 잘 살아가고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서툴러도 괜찮으니 네 가족을 잘 지키며 건강하게 살아라. 부모는 언제나 너를 믿고 바라보고 있단다.”
최종욱 기자 vip885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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