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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불교승가연합 총재 상산 |
이 글을 쓰면서 내내 내가 살아오면서 보고 느낀 조국의 분단을 생각했다. 그리고 베트남의 통일 50년을 바라하면서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염원하며 글을 쓴다. 어찌 보면 베트남은 한반도 보다 더 큰 시련의 연속이었다. 그 오랫동안의 외세에 의한 고통에서도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온 그들이 단결하여 마침내 통일베트남을 이뤄 냈다. 과연 우리는 평화통일의 한반도를 만들어 낼 수 없는 것인가? 더구나 한국은 세계 경제 10번째 선진국 대열에 서있다. 그러면서도 70년이나 되는 분단을 극복하지 못하는 민족이 과연 온당한 민족인가? 우리 후손들에게 무엇을 물려줄 것인가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린다.
평화통일과 사회통합 통일을 진지하게 생각하게 만드는 화두를 들어야 할 때다.
'우리는 통일을 각자 자신의 일로 받아들이고 있는가?' "학교에서 통일은 돼야한다고 배웠지만 왜 돼야 하는지 스스로 깊이 있는 이유를 생각해보도록 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지금까지 이 땅의 젊은이가 대부분 통일 문제에 무관심하다는 현실을 개탄하는 의견이 수없이 쏟아져 나왔지만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통일과 분단의 의미를 자신의 문제로 생각하도록 기회는 충분히 제공했는지 생각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통일은 남의 일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해야 할 일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작업이 우선적으로 이뤄져야한다. 통일의 주역으로 활동해야할 이 땅의 젊은이라면 적어도 각자 자신의 관점에서 분단과 통일의 의미를 분석하고 그 의미를 마음껏 되짚어 보는 기회 정도는 누리게 해 줘야 마땅하다. 역사를 되돌아볼 때 통일은 예측된 방식이 아니라 갑작스럽게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찾아오며, 이제 그날이 다가오고 있어 정부는 공고한 통일기반을 구축하려 하고 있다.
다른 나라들의 역사를 보니까 통일은 예측대로 오는 것이 아니라 갑작스럽게 오더라, 그런데 지금 그 예상치 못했던 통일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다. 통일은 예상의 대상이 아니라면서 지금 통일이 다가오고 있다고 예상한다는 것은 또 무슨 말인가? 정치학도 논리학이요 과학이다. 과학은 예측학문이다. 예측이 없는 학문은 과학이 아니다.
통일 앞에 좀 더 솔직해져야 한다. 지구상 최장기 분단과 최장기 휴전이라는 기록을 가지게 된 한반도에서 대한민국이 생각할 수 있는 통일방안은 '자유민주주의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통일'외에는 어떤 대안도 없음에 반하여 북한은 통일과정에서 자연히 전개 될 수밖에 없는 제도통일 체제통일을 극력 반대하면서 '우리민족끼리 이념에 입각한 자주적통일'이라는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
평등·평화·통일은 돌고 돌아온 느낌
"복지가 성장 동력이다. 평화체제와 평화는 밥이다. 나아가 사실상 통일 상태에서 이뤄지는 남북경제공동체가 우리의 살 길이다. 이런 프로세스로 나아가야 한다. 누군가는 다른 것에 눈 돌리지 말고 이 주제를 끊임없이 가지고 가야 한다. 정치조직은 터지는 사안들 뒤처리하다 제 할 일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기에 종교단체나 사회 구성원들이 사람 사는 가장 기본적 요소가 갖춰지지 않은 채 살아가고 있다는 걸 인식해야 한다. 이런 토대를 만들어야 한반도 평화운동도 발전할 수 있다."
통일은 영토·제도·사람의 통일로 완성된다. 먼저 우리 초종교계에서 통일의 마지막 단계인 ‘사람의 통일’이 이루어 져야 한다고 본다. 한반도 통일은 결코 무시되거나 회피되거나 경시될 수 없다. 지금은 우리를 힘들고 어렵게 하는 멍에이자 부담이지만 한반도평화 통일은 결국 우리만이 갖고 있는 자산이자 기회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나 몰라라 부인한다고 해서 북한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도 없다. 도저히 우리와 분리할 수 없는 북한문제와 통일문제는 그래서 우리의 도약과 발전의 계기로서, 우리만이 가질 수 있는 기회의 창으로서 자리매김 되어야 할 것이다.
국가의 지도자 가 교체 될 때마다 빠질 수 없는 메뉴 통일문제를 거론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존의 이념대결과 체제대결의 관점에서 북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상호 존중과 이해의 관점에서 북을 접근하고 남과 북이 먹고 먹히는 게 아니라 서로 이익을 창출해내는 상호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
갈등과 분열, 대립과 반목의 이 시대를 넘어설 해법은 무엇인가?
세계적 경제위기에 처한 한국 사회가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그들이 바라보는 한국 사회는 지금 어떤 모습인가? 길은 어디에 있는가? 요즘 우리사회를 규정하는 단어는 '분열과 대립'인 것 같다. 국회의 여와 야, 좌파와 우파 등 너나없이 투쟁과 대결의 양상이 너무 폭력적이고 격렬하다. 지금 우리시대를 어떻게 보시는지.
"맞다. 하지만 갈등은 하나의 생명현상인 것도 사실이다. 죽은 사회만이 갈등이 없다. 문제는 본질을 벗어난 소모적인 갈등이다. 우리가 그런 문제를 앓고 있는 게 분명한데, 우리가 대립과 분열을 개탄하면서도 그런 현실을 은근히 즐기는 경향도 있다. 공익보다 사익을 앞세우는 사람들이 정말 두려운 것은 건전한 중도세력이 형성돼 사회를 공익적인 방향으로 이끌고 가는 것이다. 극단적인 목소리가 나오는 건 별로 아픈 게 아니다. 그러다 보니 갈등을 방치하고 심지어 조장하는 일도 있는 것 같다."
'통일의 문제는 정치가들의 문제가 아니다. 전략가들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정보원의 문제가 아니다. 초종교가 먼저 나아가야 한다.' 우리가 한반도 평화통일은 세상을 염원하고 바라는 것은 통일을 통해 더욱 부강한 나라가 되고 선진국이 될 것이라는 실용적인 목적보다는 우리 민족 공동체 전체가 분단으로 인한 고통과 모순을 극복하고 함께 행복한 구원의 세계를 열어나갈 수 있으리라는 한 차원 높은 초종교적 희망 때문일 것이다.
한반도의 분단의 원인은 당시 냉전 체제 하에서 세계열강이 제공한 바, 이제 미국, 중국, 러시아 등은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을 위해 그 어느 국가들보다 앞장서야 한다.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만이 동북아에 평화를 정착시키고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길이다.
한반도 평화 상황의 구체성과 절박성에 비해서 불교의 평화관은 자칫 추상적이거나 이상적인 차원에 머무는 한계를 지니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있음을 우리는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불교의 평화가 기본적으로는 내 마음의 탐욕과 갈애를 해소함으로써 얻어지는 마음의 평화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음의 평화가 온전한 것이 될 수 있기 위해서는 나와 관계 맺고 있는 모든 존재자들을 연기적으로 인식하면서 자비의 눈길과 손길을 돌리는 자비행(慈悲行)이 동시에 뒤따라와야 한다는 것이 불교 평화관의 다른 측면임을 분명히 자각함으로써 이런 한계는 극복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꼭 극복되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
결어로 다시 한 번 베트남 민족통일을 생각하고 분단 72년의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기원한다. 이 땅에 통일을 위해 목숨 바친 애국선열과 통일열사 통일 열정에 헌신하고 있는 통일운동가 들께 감사드린다. 이럴 때 더욱더 생각나는 민족지도자들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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