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필을 잡는다. 흑연이 종이 위를 스치며 부드러운 빛과 그림자를 만들어 낸다. 선 하나, 명암 하나에 온 마음을 담는 이 순간, 나는 눈을 감고 엄마를 떠올린다. 희미해지는 듯 선명한 기억 속에서, 엄마의 따뜻한 손길과 웃음소리가 느껴진다. 그림은 내게 단순한 작업이 아니다. 이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을 담아내는 동시에, 이제는 만날 수 없는 엄마에게 전하는 소중한 편지이자 내게 유일한 위로가 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내 삶은 그림 그 자체였다. 힘들고 외로웠던 순간마다 나는 그림을 그렸다. 캔버스 위에 마음을 쏟아낼 때마다 신기하게도 아픔은 사라지고 평화가 찾아왔다.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창구였던 그림은 이제 나를 지탱해 주는 기둥이 되었다. 그리고 그 기둥의 시작에는 언제나 엄마가 계셨다.
엄마를 향한 그리움은 내 그림의 가장 깊은 명암이 된다. 맑은 하늘을 그릴 때면, 나를 바라보던 엄마의 깊고 맑은 눈빛이 떠오른다. 한 송이의 꽃을 그릴 때면, 엄마가 좋아하시던 소박한 미소와 손끝에 배어 있던 온기가 되살아난다. 모든 선과 색채는 엄마와의 추억을 불러일으키고, 그림을 그리는 시간은 엄마와 다시 만나는 기적이 된다.

엄마는 내가 가장 어둡고 막막했던 순간에도 한 줄기 빛이 되어 나를 이끌어주셨다. 나는 그 빛을 따라 지금의 나로 걸어왔고, 이제는 그 빛을 그림 속에 담아 또 다른 이의 위로와 희망이 되기를 소망한다. 나의 그림이 비록 흑백일지라도, 그 안에 담긴 엄마의 사랑과 내 그리움은 어떤 빛보다 찬란하게 빛날 것이다.
오늘도 나는 연필을 들고 조용히 종이 위에 마음을 얹는다. 그림은 엄마의 따뜻한 품이자, 제가 외로울 때 기댈 수 있는 든든한 어깨이다. 앞으로도 계속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쓸 것이다. 그 속에는 여전히 엄마가 계시고, 내가 살아가는 이유가 담겨 있을 테니까.
나의 그림 속 빛은 단순한 자연의 빛이 아니라, 삶의 빛, 사랑의 빛, 그리고 영원한 나의 엄마의 빛이다. 나는 오늘도 그 빛을 따라 묵묵히, 그러나 확신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언젠가 내 그림을 통해 누군가의 가슴에도 따뜻한 빛 한 줄기가 전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로컬세계 / 이태술 기자 sunrise121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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