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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도쿄의 재일본한국YMCA회관에서 2.8독립선언 100주년 기념식이 열리고 있다.(사진=이승민 특파원) |
이날 기념식에 앞서 2.8독립선언기념관 개관식이 먼저 있었다. 2.8독립선언에 관련된 자료들을 전시한 이 기념관은 국가보훈처의 지원을 받아 재일본한국YMCA회관 10층에서 2층으로 확장 이전, 새롭게 단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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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에 새롭게 단장 된 2.8독립선언 자료 기념관. |
도쿄에서 대한독립을 선언하고 독립만세를 외쳤던 우리 유학생들의 숭엄한 숨결이 담긴 재일본한국YMCA회관에서 100주년을 맞이하는 이 날 행사장의 열기는 뜨거웠다.
이날 기념식을 위해 한국에서 피우진 국가보훈처장, 이종걸 2.8독립선언10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위원장, 한완상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기념 사업추진위원회 위원장, 나종화 광복회 부회장, 김인복 서울YMCA이사장, 광복회원 등이 참석했고 현지에서는 이수훈 주일본한국 대사, 재일민단 여건이 단장 등을 비롯해 2.8독립선언 유가족, 국가유공자, 재일교포, 기독교 단체 등 3백여 명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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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한국학교 학생어머니합창단이 2.8독립선언의 노래를 합창고 있다. |
기념식은 동경한국학교 합창단의 2.8독립선언의 노래로 시작해 국민의례, 개식사, 기념사, 성경봉독, 기도, 2.8독립선언 낭독, 치사, 동경한국학교 학생어머니합창단의 고향의 봄, 탱고 아리랑, 선구자, 희망의 나라로 합창, 축도, 만세삼창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100년 전에 일어났던 '2·8독립선언'은 조선유학생들이 일왕이 살고 있는 적국의 심장부 동경 한복판에서 우리 민족의 독립 의지를 세계만방에 선포한 날이다. 참여한 유학생 600여 명 중 359명은 같은 달 국내로 잠입, 전국 각지로 흩어져 3·1운동을 조직·결행하고 전국적인 3·1독립만세운동의 주역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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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길 이사장이 개식사를 하고 있다. |
이청길 이사장은 개식사에서 “오늘은 일본의 불법적 국권침탈로 민족의 행로가 위태롭던 암흑의 시절, 우리의 청년들이 민족의 자주와 독립을 주창하며 의연히 일어섰던 숭고한 날이다”면서 “2.8독립선언의 선언문을 보면 단순한 독립선언을 넘어 전 세계 피식민지국들에 대한 독립선언이었고 세계만방의 자유를 빼앗긴 자들에 대한 해방선언이었다”고 강조하면서 “이제 우리는 100년 전에 있었던 조선 청년들의 목숨 건 절규가 헛되지 않도록 오늘의 삶에 평화로 구현되는 새로운 100년을 모색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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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우진 처장이 기념사를 하고 있다. |
피우진 처장은 기념사를 통해 “우리 조선 유학생 600여명이 이곳 동경에서 조국독립과 항일투쟁 의지를 세계만방에 선포한 지 100년이 되는 뜻 깊은 날이다”면서 “조국광복을 위해 싸웠던 애국선열 한 분 한 분의 피와 땀을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정부는 애국선열들의 희생과 헌신을 기억하고 계승하기 위해 국외 독립운동가, 여성독립운동가 등에 대한 발굴, 포상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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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걸 위원장이 기념사를 하고 있다. |
이종걸 위원장은 기념사에서 “100년 전 오늘 이곳에서 청년 유학생들은 우리 민족이 세계만방에 평화를 애호하고 민족자결을 옹호하는 국민임을 선언했다”면서 “조선 유학생들의 용기는 조선민족이 깨어있음을 보여준 것이며 세계 각국의 양심세력들에게 조선의 존재를 일깨워준 것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조선의 유학생들에게는 경상도와 전라도, 평안도와 함경도의 구분이 없었다. 오직 조국의 위기를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남녀노소가 하나가 된 애국운동이었다. 우리의 절실한 과제인 국민통합과 민족통일의 대과업을 추진하면서 이 정신을 되새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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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독립선언 당시의 재일조선YMCA회관. |
한편 역사적인 ‘2‧8독립선언’의 현장이 되었던 YMCA 회관은 1906년 일본의 수도 동경에 설립, 동경 유학생들에게 웅지를 심어주고, 민족정신을 일깨우는 역할을 했다. 1905년 을사보호조약에 의해 폐쇄된 재일공사관을 대신해 조선유학생들의 보호, 하숙집 제공, 일본어 교육, 진로 상담, 성경연구 등의 활동을 했다.
해방 후에는 2·8 독립선언의 유적지로써 흩어진 민족정신을 일깨워 우리민족 단결의 구심점이 되었고 관동대지진 사태에는 동족을 구출하고 보호하는 피난처가 되는 등 한일간에 국교가 없는 상태에서 재일동포를 위한 대사관의 역할을 감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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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독립선언서 서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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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독립선언 실행위원, 조선청년독립단들의 당시 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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