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소 수교와 북방 외교의 징검다리
회담 뒤에 숨겨진 3가지 결정적 순간
문선명 국빈급 예우와 특별 비자
[로컬세계 = 이승민 대기자] 1990년 4월 11일, 모스크바 크렘린 궁에서 성사된 문선명 총재와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회담은 20세기 냉전사의 물줄기를 바꾼 극적인 사건으로 기록되어 있다. 철저한 승공주의자로 알려진 종교 지도자와 공산주의 종주국의 수장이 손을 맞잡은 이 날의 만남은 이념의 시대를 끝내고 화해의 시대로 나아가는 역사적 서막이었다.
"신을 인정하십시오"… 이념을 넘어선 직언
당시 세계 언론인들을 이끌고 모스크바를 방문한 문선명 총재는 고르바초프 대통령과의 단독 회담에서 파격적인 제안을 던졌다. 문 총재는 소련의 개혁·개방 정책인 '페레스트로이카'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경제 구조의 변화를 넘어, 인간의 정신적 가치와 '종교의 자유'를 허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시 문 총재는 "소련이 신 앞에 돌아올 때 진정한 평화가 올 것"이라며 직언을 서슴지 않았고,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이를 경청하며 소련 내 종교적 권리와 민주화에 대한 의지를 피력했다.
한·소 수교와 북방 외교의 징검다리
이 회담은 당시 미수교 상태였던 한국과 소련 사이의 거대한 가교 역할을 했다. 문 총재는 고르바초프 대통령에게 한반도의 긴장 완화를 위해 소련이 적극적으로 나설 것과 한국과의 국교 수립을 앞당겨줄 것을 강력히 요청했다.
실제로 이 만남이 있은 지 두 달 뒤, 노태우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샌프란시스코 정상회담이 성사되었으며, 그해 9월 한·소 수교라는 역사적 결실로 이어졌다. 정부 차원의 외교력이 미치지 못했던 곳에 민간 차원의 '소프트 파워'가 먼저 길을 닦은 셈이다.
회담 뒤에 숨겨진 3가지 결정적 순간
1990년 4월 11일, 냉전의 심장부였던 크렘린 궁에서는 공식 공동발표문에 담기지 않은 파격적인 장면들이 잇달아 연출되었다. 이념의 장벽을 허문 것은 거창한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두 인물의 인간적인 신뢰와 목숨을 건 진언이었다.
① “신 없는 개혁은 실패합니다” – 공산당 수장을 당황시킨 파격적 직언
회담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장내에는 서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문선명 총재가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눈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대통령 각하, 페레스트로이카(개혁)가 성공하려면 반드시 하나님을 받아들여야 합니다”라고 단도직입적인 화두를 던졌기 때문이다.
무신론을 국가 이념으로 삼는 공산당 서기장 앞에서 ‘신의 존재’를 역설하는 것은 당시로서는 목숨을 건 도박과도 같았다. 배석했던 소련 측 참모들은 경악을 금치 못한 채 고르바초프의 입만 바라보았으나, 정작 그는 화를 내는 대신 문 총재의 대담함에 깊은 영감을 받은 듯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념의 심장부에서 터져 나온 이 정직한 직언은, 역설적이게도 두 사람 사이에 견고한 인간적 신뢰를 구축하는 결정적 기폭제가 되었다.
② 라이사 여사가 건넨 ‘평화의 수건’ – 퍼스트레이디들의 마음이 통하다
대통령들의 회담이 이어지는 동안, 부인들의 만남에서도 상징적인 사건이 있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부인 라이사 여사는 문 총재의 부인 한학자 총재에게 러시아 전통 문양이 수놓아진 수건을 선물했다.
러시아 문화에서 수건을 선물하는 것은 ‘손님에 대한 최고의 환대와 평화’를 의미한다. 공산 종주국의 퍼스트레이디가 종교 지도자의 부부에게 마음을 열었다는 소식은 외신을 통해 전해지며, 소련의 변화를 알리는 부드럽지만 강렬한 신호탄이 되었다.
③ 미수교국의 ‘VIP 통과’ – 국빈급 예우와 특별 비자
당시 한국과 소련은 수교 전으로, 한국 여권 소지자가 모스크바에 입국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였다. 그러나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문 총재 일행을 위해 특별 지시를 내렸다.
비자 절차는 생략되다시피 했고, 공항에는 대통령 전용기급 의전 차량과 철저한 경호 인력이 배치되었다. 소련 당국이 미수교국의 민간인에게 이 정도의 예우를 갖춘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이는 고르바초프가 문 총재를 단순한 종교인이 아닌, 한반도와 세계 평화를 위한 ‘핵심 파트너’로 인정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역사적 자산으로 남은 '모스크바의 봄'
비록 세월이 흘러 국제 정세는 다시금 요동치고 있지만, 1990년 크렘린에서 보여준 두 인물의 결단은 '진정한 평화는 대화와 상호 이해에서 시작된다'는 보편적 진리를 일깨워준다. 총 한 방 쏘지 않고 냉전의 벽을 허물 수 있었던 힘은 바로 이러한 인간적인 교감과 진정성 있는 신뢰의 결과였다.
이념의 끝자락에서 피어난 이들의 만남은 오늘날 갈등과 분열이 심화되는 국제 사회에 여전히 중요한 시사점을 던지고 있다.
로컬세계 / 이승민 대기자 happydoors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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