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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우 행정학박사(지적학전공)/작가 |
역사를 정의하는 방법은 ‘일정한 영토에는 고대부터 어떤 민족이나 나라에 의해서 보편성과 상속성을 지니고 생성된 영토문화가 수 세기에 걸쳐 발전하고 축적되면서 역사를 이루어 지금의 현실이 만들어졌고, 그 영토에 축적된 영토문화는 주변의 다른 민족이나 나라가 소유하고 생활하는 영토의 영토문화와 비교해 볼 때는 서로 다르지만, 우리 민족이나 나라의 영토에 축적된 영토문화와는 동일하므로 그 영토문화의 문화주권자 즉, 영토문화주권자는 우리이므로 그 역사는 우리 역사다’라고 해야 맞는 것이다.
문화는 지금, 이 순간 일어나고 있는 보편적이고 상속적인 모든 것으로, 그 문화가 순간순간의 시간이 지나면서 축적된 것이 역사다. 일정한 영토의 보편적이고 상속적인 영토문화가 축적된 것이 그 영토의 역사고, 그 영토문화와 역사는 그 영토에서 수십 세기에 걸쳐 대를 이어 생활하고 있는 민족이나 혹은 나라에 의해서 형성된 것임으로, 그 일정한 영토의 영토문화를 형성한 영토문화주권자가 그 영토에 새겨진 역사의 주인이다. 일정한 영토의 역사 주체는 영토문화주권자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또한 그 영토문화와 역사는 일정한 영토를 지배하고 생활한 민족이나 나라인 영토문화주권자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임으로 그 영토의 영토문화주권자가 영토권자가 되어야 한다. 따라서 영토문화와 역사와 영토문화주권은 절대 따로 뗄 수 없고 반드시 이어져, 영토권이라는 하나의 주체를 향해 가는 요소들이다. 그런데 이들 중에서 하나가 왜곡되어 그것을 감추려고 하다가는 모든 것이 헝클어져 걷잡을 수 없어 날조를 반복하게 되는 것으로, 한족 중국이 동북공정을 행하는 이유다.
한족 중국은 우리 한민족의 전통문화인 윷놀이, 검무, 퉁소 등의 민속문화와 심지어는 비빔밥 같은 민속 음식문화까지 조선족이 만주에서 행하고 있으니 중국문화라고 억지를 부리며 중국 무형 문화유산으로 지정하고 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일정한 영토의 영토권자는 그 영토에서 보편성과 상속성을 지닌 영토문화를 생성하고 발전시킨 영토문화주권자로, 역사를 이어온 역사의 주체가 되는 것은 물론 영토권자로 정의되어야 한다는 것을 중국은 잘 알기 때문에, 만주에서 행해지고 있는 문화를 한족 중국문화로 만들기 위한 발악이다.
비록 ‘문화영토론’과 ‘영토문화론’이라는 용어는 모르거나 사용하지 않는 한족 중국일지라도, 그 원리는 당연히 맞는 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영토문화주권을 소유해야 자신들은 소유 자격이 없는 만주를 강점한 것을 합리화 시킬 수 있다는 생각 하나로, 근본부터 말도 안 되는 이론을 내세워 문화와 역사 왜곡을 반복하며 점점 더 그 도를 넘는 것이다.
만주의 영토권은 영토문화주권자인 우리 한민족의 소유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한족 중국이었으나 그들에게 있어서의 만주는 가장 차지하고 싶은 영토였다. 역사상 만주를 지배하고 생활하는 우리 한민족과의 전쟁에서 단 한 번도 승리해본 적이 없는 것이 한족이다. 여북하면 수나라 문제가 죽으면서 절대 고구려를 침략해서는 안 된다는 유언을 남겼으나, 그 말을 듣지 않고 수 양제가 고구려를 침략했다가, 그 후유증으로 수 양제는 고구려 침략 당시 자신이 임명했던 장수 우문술의 아들 우문화급에게 618년에 피살되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고 수나라는 건국 37년 만에 멸망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은 당나라 역시 고구려를 침략해서 얻은 것은 패배와 상처뿐이었다. 당 태종은 양만춘 장군이 쏜 화살을 눈에 맞아 애꾸가 되는 참혹한 패배를 맛보고, 결국 그 상처의 후유증으로 여러 병을 동반하며 병고에 시달리다가 죽었다. 그런 만주이기에 한족 중국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일 뿐만 아니라 반드시 정복해보고 싶은 영토이면서도 절대로 정복할 수 없는 영토였다. (다음 호에 계속)
신용우 행정학박사(지적학전공)/작가/칼럼니스트/영토론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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