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사람이 굶어죽는 생지옥이 따로 없다.” 한 여성 탈북자의 수기 ‘북한, 지옥 탈출 9년’에 실린 눈물어린 체험담이다. 심한 가슴앓이, 흉통(胸痛)을 느낀다. 아, 시대의 아픔! 이를 어이할꺼나. 주인공은 서강대 중국문화학과 4학년 김은선 씨(26)다. 김 씨는 이달 초 프랑스 파리 한국문화원에서 한국어판 출간 없이 자서전을 바로 프랑스어판으로 냈다. “유럽의 많은 사람들이 북한을 제대로 알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쓰게 됐다”는 게 그녀의 설명이다. 1998년부터 부모, 언니와 함께 목숨을 건 탈북에 나선 김씨는 탈북 성공(1999년), 강제 북송(2002년), 한 달 만의 재탈북, 한국 입국 성공(2006년)의 과정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그녀는 힘주어 반문한다. “초등학생에게 공개 처형을 의무적으로 보게 하는 집단이 세상에 어디 또 있겠는가?”
목숨 건 탈북 수기는 이 시대 민족의 아픔 상징
그렇다. 탈북자 강제 북송 문제는 민족의 비극을 넘어 인권과 인류 양심의 과제다. 자유와 기아를 면키 위해 찾아왔건만, 강제로 다시 사지(死地) 북한 땅으로 강제 북송 위기에 처한 탈북자 가족이 절망 끝에 함께 독약을 먹고 자살한 경우 등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한단 말인가.
그럼, 탈북자 문제 해법은 무엇일까. 물론 북한이 개혁개방으로 ‘웬만큼 살만한 나라’가 되고, 그 터 위에 남북한 평화통일이 지름길일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희망을 가질 수 없는, 무망(無望)이다. 차선책은? 중국의 인식 개선이다. 우리 정부는 유엔 무대에서 탈북자 문제를 공식 제기한 바 있다. 외교통상부 다자외교조정관이 근래 스위스 제네바에서 개최된 제19차 유엔 인권이사회(UNHRC) 고위급회의에서 “탈북자들이 혹독한 상황에 처하지 않도록 모든 직접 관련국이 강제송환 금지 원칙을 준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국회대표단은 UNHRC에 참석해 북한대표부와 물리적으로 충돌까지 빚을 정도였다.
정부가 언급한 ‘모든 직접 관련국’은 6~7개국에 이른다. 중국과 러시아, 태국· 라오스·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이다. 1990년대 중반 탈북 러시가 시작된 이래 구축된 ‘한국행 루트’에 포함된 나라들이다.
‘관련국들’ 중에 목숨이 위험할 정도의 탄압과 고문을 받을 것이 뻔한데도 강제송환 조치를 하는 나라는 중국뿐이다. 또 중국처럼 탈북자들을 ‘불법 월경자’로 규정하는 나라도 없다. 중국은 인도적 차원에서 이들을 보호하는 게 온당한 처사다. 국제법적으로도 정치적 박해나 굶주림을 피해 온 사람은 난민이고, 따라서 이들의 인권은 우선적으로 보호돼야 한다. 아울러 비인도적이고 비인륜적인 조항을 담고 있는 북중 국경지역업무협정은 폐지돼야 하는 것이다. 특히 중국은 전 세계의 비난을 사고 있는 탈북자 강제송환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 아울러 탈북자들이 난민 지위를 받을 수 있도록 조치하는 게 G2(주요2개국)로 성장한 중국이 책임있는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할 일을 하는 것이다.
중국의 인권 중시와 북의 개혁·개방 시급해
북한의 ‘철든 태도’가 아쉽다. 통제와 처벌을 강화한다고 해서 탈북자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시대착오적 퇴행을 경계해야 하는 것이다. 김일성·정일 부자는 주체사상을 강조하며 극단적인 폐쇄정책을 편 결과 주민의 기본적인 먹거리 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하고 세상을 떴다. 김정은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역시 현 체제로는 1990년대 주민 수백만 명을 굶겨 죽인 아귀지옥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음을 직시하길 바란다. 선대(先代)의 길을 답습한다면 북한 체제의 말로는 앞당겨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책무가 무겁고 크다. 현재 중국에는 북한을 탈출한 우리 동포가 최소 5만여 명에서 많게는 10만여 명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이 가운데 대한민국의 품에 안긴 이들은 2011년의 경우 2700여 명에 불과하다. 중국의 탈북자 강제북송 문제는 비단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더 이상 탈북자들의 아픔을 외면해선 안 되는 한계점에 이르렀다. 동시대를 사는 북녘 동포들의 아픔을 보듬고, 눈물을 닦아주는 ‘희망가’를 부를 때다.
- 기사입력 2012.03.16 (금) 10:36, 최종수정 2012.03.16 (금)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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