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와 통일을 향한 두 거인 철학으로 맞닿다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의 선구적 역할 재조명
[로컬세계 = 이승민 대기자] 한국 현대사의 격랑 속에서 ‘평화’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정진했던 문선명 총재와 김대중 전 대통령의 특별한 철학적 인연과 업적이 신년을 맞아 재조명되고 있다.
종교와 정치라는 각기 다른 영역에서 활동했으나, 두 지도자는 고난의 가시밭길을 넘어 ‘참사랑’과 ‘용서’라는 인류 보편의 가치를 실천하며 한반도 해빙을 이끈 평화의 동반자였다.
■ ‘참사랑’과 ‘관용’의 만남… 철학적 공생(共生)의 실천
문선명 총재 평화 철학의 핵심은 ‘하나님 아래 인류는 한 가족’이라는 인류대가족주의(One Family under God)에 있다. 이는 인종과 국가, 종교의 벽을 넘어서는 보편적 형제애를 강조하는 영성적 세계관이다.
이러한 문 총재의 신념은 인간 존엄성을 최우선시하며 세계 시민주의를 지향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철학과 일치한다.
특히 문 총재가 평생 설파한 ‘위하는 삶(참사랑)’은 자신을 박해했던 이들까지 품어 안는 희생적 실천으로 나타났다.
이는 사형 선고와 투옥 등 수많은 정치적 탄압을 겪으면서도 집권 후 정적들을 사면하며 화해를 도모했던 김 전 대통령의 ‘용서와 화해의 정치’와 맞닿아 있다.
문 총재의 영성적 참사랑이 김 전 대통령의 현실적 관용으로 발현되며 동북아 평화의 정신적 토대가 된 셈이다.
■ 대북 평화의 물꼬를 튼 선구자, 제도적 평화의 기반 마련
두 지도자의 철학이 가장 극적으로 결실을 본 지점은 대북 관계였다. 문 총재는 민간 차원에서 북한의 마음(Mind)을 열었고, 김 전 대통령은 이를 국가적 시스템(System)으로 안착시켰다.
문선명 총재의 결단(1991년): 국제승공연합을 창설하며 반공의 기수로 알려졌던 문 총재는 1991년 전격 방북하여 김일성 주석과 만났다. 당시 그는 "원수조차 사랑해야 한다"는 신념 아래 '형제'의 인연을 맺으며 금강산 개발과 평화자동차 설립 등 민간 경제 협력의 초석을 놓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완성(2000년): 문 총재가 열어놓은 민간 차원의 '심정적 통로'는 2000년 남북정상회담과 햇볕정책을 통해 '국가적 대동맥'으로 확장되었다. 문 총재가 구축한 신뢰를 바탕으로 남북 교류의 제도화가 이뤄진 것이다.
■ 상호 존중으로 이어진 30년 인연
두 사람의 인연은 단순한 협력을 넘어 깊은 신뢰와 존중으로 이어졌다. 1998년 청와대 회동 당시 김 대통령은 문 총재가 보유한 방대한 해외 네트워크와 대북 영향력을 민간 외교의 소중한 자산으로 높이 평가했다.
이러한 유대는 서거 시기에도 빛났다. 2009년 김 전 대통령 서거 시 문 총재는 아들을 보내 조문하며 예우를 다했고, 2012년 문 총재 성화(서거) 시에도 이희호 여사가 조화를 보내 애도를 표하는 등 세기를 넘어선 두 거인의 우정은 역사의 기록으로 남았다.
■ ‘평화는 사랑과 용서로 이루어진다’는 이정표 제시
문선명 총재와 김대중 전 대통령은 ‘평화는 힘이 아닌 사랑과 용서로 이루어진다’는 진리를 삶 전반을 통해 증명했다. 냉전의 잔재와 갈등이 상존하는 오늘날, 문 총재의 초종교적 평화 철학과 김 전 대통령의 실사구시적 민주 철학의 만남은 갈등 치유와 공생의 시대로 나아가는 우리 사회의 귀중한 이정표가 되고 있다.
【新年特集②】苦難の茨の道に咲いた平和の花、文鮮明と金大中の30年間にわたる同行
[LOCAL 世界 = 李勝敏 記者] 韓国現代史の激動の中で「平和」という一つの目標に向かって精進した文鮮明 総裁と金大中 元大統領。その特別な哲学的因縁と業績が、新年を迎え改めて脚光を浴びている。
宗教と政治という異なる領域で活動しながらも、両指導者は苦難の茨の道を越え、「真の愛」と「許し」という人類普遍の価値を実践し、朝鮮半島の融和を導いた平和の伴走者であった。
■ 「真の愛」と「寛容」の邂逅…哲学的共生の体現
文鮮明総裁の平和哲学の核心は、「神の下の人類一家族(One Family under God)」にある。これは人種や国家、宗教の壁を越えた普遍的な同胞愛を強調する霊的な世界観である。
こうした文総裁の信念は、人間の尊厳を最優先し、世界市民主義を志向した金大中元大統領の哲学と軌を一にする。
特に、文総裁が終生説き続けた「ために生きる人生(真の愛)」は、自身を迫害した者たちまでも包み込む犠牲的な実践として現れた。これは、死刑宣告や投獄など数々の政治的弾圧を受けながらも、執権後に政敵を赦免し和解を図った金元大統領の「許しと和解の政治」と深く通じている。文総裁の霊的な「真の愛」が、金元大統領の実践的な「寛容」として発現し、東北アジア平和の精神的土台となったのである。
■ 対北平和の活路を開いた先駆者、制度的平和の基盤を築く
二人の指導者の哲学が最も劇的に結実したのは、対北朝鮮関係であった。文総裁は民間レベルで北朝鮮の「心(Mind)」を開き、金元大統領はそれを国家的な「制度(System)」として定着させた。
文鮮明総裁の決断(1991年): 国際勝共連合を創設し、反共の旗手として知られた文総裁は、1991年に電撃訪北して金日成 主席と会談した。当時、彼は「仇(かたき)さえも愛さねばならない」という信念の下で「兄弟」の縁を結び、金剛山 開発や平和自動車の設立など、民間経済協力の礎を築いた。
金大중元大統領の完成(2000年): 文総裁が開いた民間レベルの「心情的通路」は、2000年の南北首脳会談と「太陽政策」を通じて「国家的な大動脈」へと拡張された。文総裁が構築した信頼を土台に、南北交流の制度化が成し遂げられたのである。
■ 相互尊重で結ばれた30年の絆
二人の縁は、単なる協力関係を超え、深い信頼と尊重へと繋がっていた。1998年の青瓦台(大統領府)会談当時、金大統領は、文総裁が保有する膨大な海外ネットワークと対北影響力を、民間外交の貴重な資産として高く評価した。
こうした絆は、両氏の逝去に際しても輝きを放った。2009年に金元大統領が逝去した際、文総裁は実子を派遣して弔問し礼を尽くした。また、2012年に文総裁が聖和(逝去)した際にも、李姫鎬 女史が供花を贈り哀悼の意を表すなど、世紀を越えた二人の巨人の友情は歴史に深く刻まれた。
■ 「平和は愛と許しによって成される」という道標を提示
文鮮明総裁と金大중元大統領は、「平和は力ではなく、愛と許しによって成される」という真理を、その生涯を通じて証明した。冷戦の残滓と葛藤が依然として存在する今日、文総裁の超宗教的な平和哲学と金元大統領の実事求心的な民主哲学の出会いは、葛藤の治癒と共生の時代へと進む現代社会の貴重な道標(みちしるべ)となっている。
LOCAL 世界 / 李勝敏 記者 happydoors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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