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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우 행정학박사(지적학전공)/작가 |
물론 이 논문에서는 삭감된 5세손을 충분한 근거에 의해 복원하고 그동안 제기되어왔던 여러 가지 설에 대한 올바른 근거를 제시하여 고구려 건국연대를 기원전 217년으로 비정한 것이다.
하지만 여러 가지 연구 뒤에 결과를 얻어낸 필자의 소견으로는, 굳이 그렇게 어려운 과정이 아니더라도 전회에서 서술한 4가지 이론을 합리적으로 따져보면 고구려 건국연대가 기원전 217년이라는 사실은 어렵지 않게 도출된다. 필자의 경우에는, 학설로 굳히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근거가 필요해서 확실한 이론으로 무장한 주장을 제기하여 논문을 기술하고 발표한 것이지만, 일반 독자들이라며 굳이 필자의 논문이 아니더라도 전회에서 많은 사학자가 주장해온 네 가지 이론을 합리적으로 조합하면 고구려 건국연대는 기원전 217년이라는 것이다.
5세손의 왕이 삭감되었으니 고구려 역사는 확실히 삭감되었고, 한사군에 고구려 현이 있었으니 한사군이 설치된 기원전 108년 이전에 건국되고, 기원전 221년에 건국되어 기원전 206년에 멸망한 진나라의 동북쪽에 존재하고 갑신년에 건국되었다면 기원전 221년과 기원전 206년에 존재하는 기원전 217년에 건국되었다는 것으로, 고구려가 기원전 217년에 건국되었다면 668년에 멸망한 고구려 존립연대가 885년이고 고구려 부흥을 도모하다가 682년에 사망한 보장왕의 죽음까지는 899년으로 건국된지 900년이라고 한 ‘유국900년설’과도 일치하기 때문이다.
고구려 건국연대가 기원전 217년으로 재설정되는 것은 단순히 고구려가 일찍 건국되고 아니고의 문제가 아니다. 고구려가 기원전 217년에 건국되었다는 사실이 중요한 이유는 한사군의 위치를 포함하여 한족의 중국이 만주의 문화와 역사에 영향을 끼쳤느냐 아니냐를 판가름하는 잣대 중 하나가 되기 때문에 아주 중요한 일이다.
지금까지는 고구려 건국연대가 기원전 37년으로 정의되었기에 한사군의 위치가 한반도에 설정되기도 했지만, 고구려가 기원전 217년에 건국되고 그 영역이 만주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면 한나라가 고조선을 침략하여 한사군을 설치하던 기원전 108년의 만주 판세는 한사군이 절대 발을 들여놓을 수 없는 상황으로 정립된다.
그에 반해서 지금까지의 통설처럼 고구려가 기원전 37년에 건국되었다면, 한나라가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기원전 108년부터 만주를 지배했으니 만주에 대한 권리가 한나라 후손인 한족 중국에도 있으며 그 땅에서 건국된 고구려 역사가 중국 역사라고 억지를 부릴 소지를 제공할 수도 있는 것이다. 단순히 고구려의 건국연대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만주 영토권에 대한 정통성의 시비를 불러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고구려 건국연대를 기원전 217년으로 바로잡으면, 기원전 217년부터 기원전 37년 사이인 180년의 세월 동안 고구려 추모왕을 비롯한 제왕들의 영토확장으로 인한 고구려 영역 역시 180년이 소급되어 정의되어야 한다. 그리고 고구려가 건국된 기원전 217년에서 기원전 108년까지 약 110년의 세월 동안의 고구려 강역은 추모왕에서 대무신왕까지 확장한 강역으로 보면 무리가 없다.
통설대로 고구려가 환인현에서 건국되었든, 아니면 최근 새롭게 대두되어 '삼국유사'의 기록을 근거로 그 타당성을 인정받고 있는 바와 같이 의무려산 일대에 건국되었든 간에 '삼국사기????' 비롯한 각종 사서에 정리된 고구려의 영역을 바탕으로 본다면, 기원전 108년경의 고구려 영역은 유리왕이 정벌한 요하 서북쪽 끝 시라무렌강 유역을 비롯한 요하 서쪽으로부터 동으로는 연해주를 포함하고 북으로는 부여와 국경을 마주하여, [그림]에서 보듯이, 만주 전역을 고구려와 부여로 구성된 우리 한민족이 지배하는 생활영역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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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사군의 위치 비정도 |
(그림의 출처는 “김종서, 「고조선과 한사군의 위치 비정 연구」”로 필자가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도시와 강 이름 등을 추가하는 수정을 가한 것이다.)
기원전 109년 한나라 침략 당시 한나라 군대가 진출했던 곳은 요하 서쪽까지도 미치지 못하고, 기원전 108년에 설치된 한사군은 난하와 대릉하 유역에 머물며 한족 중심의 중국은 만주의 어느 곳에서도 자신들의 문화를 뿌리내릴 틈이 없었다.
신용우 행정학박사(지적학전공)/작가/칼럼니스트/영토론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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