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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월관음보살 곁에서 관운장이 지키고 있다. (사진 이승민 기자) |
[로컬세계 = 사진 글 이승민 기자] (주) 이안 R&D의 이무용 회장은 고미술품 애호가다. 아직 그의 집에는 가본 적이 없다. 방안에 어떤 그림들이 걸려 있는지 도무지 궁금해서 전화를 걸었다.
‘방은 어떻게 꾸며져 있을까. 아마도 현대적인 장식에 고전적인 그림 여러 점 걸려 있겠지.’
약속 날이 되어 찾아갔다. 이 회장이 반갑게 맞아 집안으로 안내해 한방차를 마시며 미술이야기를 나누었다. 고미술품을 가까이서 직접 볼 수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마저 설렜다. 미술방으로 들어가 보았다. 여러 고미술품 중에서도 벽에 걸린 한 폭의 커다란 그림에 내 시선은 고정되었고 내 몸은 굳어버렸다.
세계적인 명작 '수월관음보살도'가 걸려 있었고 곁에서는 천하의 명장 관우가 그림을 지키고 있었다. 관우(가로 29cm 세로 48cm)는 백옥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도무지 믿어지지 않아 나도 모르게 물었다.
“저 그림 진짠가요.”
이 회장은 웃음 지으며 그림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수월관음보살도'는 현재 일본을 비롯하여 전 세계에 160여 점이 남아 있지만 사실상 우리나라에 있는 작품은 몇 점에 불과했다.
이 회장은 과거 이 작품을 소장하고 있던 사람으로부터 구구절절 입수 경위를 듣고 그림에 너무 반하여 고가에 매입했다. 한국고미술협회 관계자는 이 그림을 보는 순간 감동 감격했고 고려시대에 그려진 진품으로 인증했다.
하지만 그림을 감상한 많은 사람들은 진품이라고 믿으려 하지 않았다. 가짜라고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한국고미술협회를 사기꾼협회라고 악담하는 사람까지 나타났다. 너무도 황당한 일들이 자주 벌어지면서 결국 이 그림은 제작연대가 과연 고려시대에 제작되었는지의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 재판정에 오르게 되었다.
법원은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 연대측정을 의뢰했고, 2012년 11월 6일, 한국지질자원연구원으로부터 14세기의 작품이라는 방사성 탄소 연대측정 결과보고서를 보내왔다. 재판에서 진품으로 판정을 받았고, 법정은 한국고미술협회의 인증이 맞다고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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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북부지방법원의 명령에 의해 한국고미술협회는 2011.7.14일 전, 후 무후하게 수월관음보살도는 14세기에 제작된 아주 귀한 작품이라고 법원에 발송한 감정소견서. |
수월관음은 33관음보살 중 하나로 보타락산 기암괴석 위에 편안하게 앉아있는 중에 도를 구하러 찾아온 선재동자를 만나자 선문선답이 오가면서 자비로운 얼굴로 내려다보고 있는 장면이다. 화엄경 입법계품에 '산골짜기에 냇물이 굽이쳐 흐르고, 수목이 울창하며 부드러운 향초가 땅에 깔린 금강보석 위에 관음보살이 앉아 있다.'는 내용이 있다.
또 화엄경에는 선재동자가 찾아다니는 53인의 선지식 가운데 28번째로 만나는 존재가 관음으로 나온다. 배경에는 푸른 대나무와 수목화초가 있고, 발아래로 냇물이 흐르는 가운데 연꽃이 피어있으며, 한쪽에는 선재동자가 배례를 하고 있다. 관음의 등 뒤로 달처럼 크고 둥근 광배가 있고, 선재동자를 굽어보는 듯 물에 비친 달을 보는 듯 세상은 자비의 빛으로 가득하다.
고려를 중심으로 널리 유행한 '수월관음도'는 보타락산에 거주한다는 관음진신 신앙이 시각적으로 표현된 예술이다. 수백개의 가는 필선과 화려하면서도 섬세한 채색이 하염없이 투명하고 청정하다. 바람결에 움직이고 있는 듯한 절묘하고도 세세한 선과 무늬, 그리고 그 모양과 색채의 조화는 14세기의 디자인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고려인만이 가능한 그림세계의 백미다.
이무용 회장이 소장하고 있는 이 작품은 14세기 고려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가로 80cm, 세로 182cm다. 현재 삼성미술관에 소장된 가로 53cm, 세로 86cm보다 2배 이상 커서 크기나 선명도나 보존상태 면에서 현존하는 고려시대 작품 중 으뜸이다. 종교적인 미와 격식을 지닌 작품으로 고려 불화의 세계를 넘어 고려 기술이 총동원된 고려 그 자체를 보여주는 매우 귀중한 작품이다.
관음보살은 자비로운 모습으로 중생 앞에 나타나 여러가지로 깨달음을 돕는 보살이다.
그림 속의 관음보살을 보면 반가좌의 자세로 앉아 왼쪽 하단 구석의 선재동자를 굽어보고 있다. 가는 눈과 작은 입에서는 부드러우면서도 근엄한 인상이 풍기고, 풍만한 얼굴과 섬세한 이목구비를 가지고 있는 모습에서 편안함과 안정감을 준다.
머리에는 화려한 보관(寶冠)을 높이 쓰고, 섬세한 무늬로 전신을 감싸고 있는 투명하고 부드러운 옷은 보살의 우아함을 더하고 있다. 여기에 팔찌 목걸이 등의 장식으로 보살의 고귀함을 더욱 돋보이게 표현하였다. 등 뒤로는 한 쌍의 푸른 대나무가 보이고 바위 끝에는 버들가지가 꽂힌 꽃병이 있다. 그 주위를 둥근 광배(光背)가 둘러싸고 있고 관음의 발아래는 붉고 흰 산호초와 연꽃 그리고 이름 모를 꽃들이 피어 있다.
금니(순금가루)를 사용한 근엄한 채색, 정성스럽게 칠한 화필, 치밀한 구성과 흐트러짐 없는 유려한 곡선, 은은하면서도 화려한 색감의 대비와 구도가 완벽하게 조화를 갖추고 있어 가히 고려청자와 쌍벽을 이뤘다 할 동시대의 뛰어난 세계적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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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둠 속에서 빛을 보면 발산하는 신비한 야광주 관우상. |
그림을 경호하는 관우상 또한 걸작이다. 어두운 밤이면 빛이 투과되어 신비롭기 그지없다. 백옥으로 조각된 이 작품은 높이 48cm 가로 29cm 무게는 100킬로다. 관우는 천하제일의 명장이라는 별칭과 함께 무와 충, 의리와 재물의 화신(化神)으로 인지되어 높은 인기와 명성을 자랑하는 인물임은 물론 민간 신앙의 대상이 되어 신으로서 숭앙을 받는다.
14세기에 제작된 수월관음보살도를 마치 유비를 지키는 것처럼 경호하는 무장 관우를 보면서 모나리자 그림이 출장을 가면 국빈급 경호를 받는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모나리자 그림의 경호원이 아무리 용해도 관우만 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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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고미술협회가 감정한 수월관음보살도의 제작시기가 과연 14세기의 연대가 맞는지의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정부기관인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 2012.8.3일 의뢰하여, 2012.11.6일,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탄소연대측정 결과, 한국고미술협회 감정 대로 '14세기와 동일하다'는 탄소연대측정 결과보고서. |
법원은 한국고미술협회가 감정한 수월관음보살도의 제작 연대의 진위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정부기관인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 측정을 명령했고, 연구원은 최첨단 과학기술인 방사선 탄소연대측정으로 정밀조사를 진행한 결과, 수월관음보살도가 고려시대인 14세기 경에 제작됐다는 곳이 확인되어 나왔다. 이에 법원은 한국고미술협회의 감정을 인정하게 됨으로써 가짜와 진짜의 오랜 논쟁이 종결됐고, 이무용 회장이 소장하고 있는 수월관음보살도는 고려시대 14세기에 제작된 작품으로 공인됐다.
이무용 회장은 "수월관음보살도가 고려시대인 14세기의 작품으로 공인받은 것을 기념하여 천하의 명장 관우를 야광주 백옥으로 재탄생하게 하여 수월관음보살님을 보필하게 했다"면서 "자비롭게 미소 짓는 수월관음보살도를 보고 있으면 어떤 그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장엄한 생명력을 느낀다. 중국에도 일본에도 없는 고려만의 독창적이고 독특한 그림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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