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과 재일학도의용군, 사선을 넘은 애국심
총칼 대신 ‘펜’으로 일구는 평화 통일
강창만 사장의 '정론직필', 한·미·일 가치 동맹의 가교
[로컬세계 = 글·사진 이승민 대기자] 일본 열도의 중심에서 한반도의 자유와 평화를 외쳐온 언론이 있다. 1959년 창간 이래 재일동포 사회의 등불이 되어온 ‘통일일보’다. 독립운동의 현장에서 시작된 그들의 펜 끝은 이제 한·미·일 가치 동맹의 가교를 넘어 통일과 평양 지국 개설이라는 원대한 꿈을 향하고 있다.
항일의 불꽃, 육삼정(六三亭)에서 피어나다
통일일보의 뿌리는 1933년 3월, 중국 상하이의 요리점 '육삼정'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창간 주역인 원심창(元心昌) 의사는 백정기, 이강훈 의사와 함께 주중 일본공사 암살을 기도하며 일제의 침략 야욕을 전 세계에 알리고자 했다.
비록 밀정의 고발로 거사는 미수에 그치고 13년의 옥고를 치러야 했지만, 그의 불굴의 독립 정신은 훗날 일본 땅에서 '펜'을 통해 민족의 길을 밝히는 통일일보의 정신적 자양분이 되었다.
6·25 전쟁과 재일학도의용군, 사선을 넘은 애국심
해방 후에도 원심창 선생의 조국 사랑은 멈추지 않았다.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자 그는 재일민단 사무총장으로서 "조국이 없으면 나도 없다"는 기치 아래 642명의 재일학도의용군 참전을 주도했다.
이들은 인천상륙 작전, 장진호 전투 등 주요 전장에서 피를 흘리며 승리의 밑거름이 되었고, 원 선생은 구호 물자와 자금을 보내는 ‘전재원호사업위원장’으로서 해외에서도 실천적 지사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총칼 대신 ‘펜’으로 일구는 평화 통일
전쟁의 참화를 목도한 원심창 선생은 무력이 아닌 자유민주주의 기반의 평화적 통일만이 살길임을 확신했다. 이에 1959년 1월 1일, 이영근 선생 등과 뜻을 모아 《통일일보》당시 제호 (조선신문)을 창간했다.
조총련의 왜곡된 선동에 맞서 북한 체제의 실상을 폭로하고, 재일동포들에게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을 심어주는 것이 그들의 사명이었다. 이후 이승목 사장 대에 이르러 일간지로 승격하며 일본 정계와 지식인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독보적인 정론지로 성장했다.
강창만 사장의 '정론직필', 한·미·일 가치 동맹의 가교
현재 통일일보를 이끄는 강창만 사장은 선대의 유지를 현대적 감각으로 계승하고 있다. 그는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한·미·일 가치 동맹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일본 내 혐한 정서와 조총련의 공세에 논리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일본은 기관총으로 쏘는데 우리는 죽창으로 싸울 수 없다."
강 사장의 이 일갈은 우리 언론이 더 강력한 정보력과 논리를 갖춰야 한다는 절박함의 표현이다. 최근 통일일보는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과 차세대 동포 교육에 힘쓰며, 과거의 기록을 미래의 자산으로 바꾸는 혁신을 거듭하고 있다.
끝나지 않은 여정, "최종 목적지는 평양 지국"
독립운동의 투혼에서 시작된 통일일보의 역사가 이제 70년을 바라보고 있다. "통일일보의 최종 목적지는 평양 지국 개설"이라는 강창만 사장의 포부는 90여 년 전 육삼정에서 원심창 의사가 품었던 자유의 꿈과 그 궤를 같이한다.
도쿄의 작은 사무실에서 피어난 통일의 불꽃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꺼지지 않은 채, 한반도의 진정한 광복과 자유 통일을 향한 험난한 여정의 이정표가 되어주고 있다.
다음은 강창만 통일일보 사장의 경영 철학인 '정론직필'과 '가치 동맹', 그리고 '평양 지국 개설'이라는 원대한 포부를 담은 인터뷰 기사.
강창만 사장 인터뷰
강창만 통일일보 사장이 말하는 '재일 정론지 70년'의 사명
도쿄 미나토구에 위치한 통일일보 사옥. 집무실 벽면에는 창간 주역 원심창 의사의 사진이 걸려 있다. 육삼정의 투혼이 서린 그 사진 아래서 강창만 사장은 "우리의 펜은 여전히 전장(戰場)에 있다"고 입을 뗐다. 70년 가까이 일본 땅에서 '자유 통일'의 횃불을 들어온 그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가득했다.
- 통일일보의 뿌리가 독립운동에 있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통일일보는 단순한 언론이 아닙니다. 원심창 의사가 육삼정에서 보여준 항일 투혼, 그리고 6·25 전쟁 당시 재일학도의용군을 이끌었던 그 애국심이 우리의 유전자(DNA)입니다. 과거엔 총으로 조국을 지켰다면, 지금은 '정론(正論)'으로 조국을 지키는 것이죠. 독립운동의 정신이 평화적 자유 통일 운동으로 계승된 것입니다.
- 일본은 기관총인데 우리는 죽창이다"라는 과거 발언이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유효한 진단입니다. 일본 내 조총련과 혐한 세력은 고도의 정보력과 논리로 우리를 공격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감정적인 '죽창'만 휘둘러선 안 됩니다. 지성(知性)과 팩트라는 '기관총'을 갖춰야 합니다. 통일일보가 일본의 정계와 지식인 사회를 상대로 한·미·일 가치 동맹의 당위성을 논리적으로 설파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 최근 한·미·일 가치 동맹을 유독 강조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한반도의 자유 통일은 우리만의 힘으로 불가능합니다. 미국이라는 오른팔, 일본이라는 왼팔이 함께 움직여줘야 합니다. 1945년 이전의 일본과 지금의 일본을 구분해야 합니다. 지금의 일본은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핵심 파트너입니다. 통일일보는 그 가교 역할을 하며, 조총련의 선동으로부터 재일동포들의 정체성을 지키는 방파제가 되고자 합니다.
- 평양 지국 개설이라는 목표가 매우 도전적으로 들립니다.
많은 이들이 꿈이라 말하지만, 저에게는 반드시 도달해야 할 '최종 목적지'입니다. 원심창 의사가 육삼정에서 꿈꿨던 것은 단순히 일제를 몰아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이 자유롭게 통일이 되어 함께 잘 사는 나라였습니다. 그 꿈의 완성은 북한 동포들에게도 자유를 전하는 것입니다. 자유 통일의 그날, 평양 한복판에서 통일일보를 뿌리는 것이 제 마지막 사명입니다."
- 미래 세대와 디지털 혁신에도 힘을 쏟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과거의 기록을 먼지 쌓인 종이로 남겨두어선 안 됩니다. 디지털 아카이브를 통해 70년의 기록을 미래 자산으로 바꾸고 있습니다. 또한, 일본에서 자라는 차세대 동포들이 '한국인'이라는 뿌리를 잊지 않도록 교육하는 일에도 전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미래 통일 한국의 주역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자 수첩] 인터뷰 내내 강 사장은 '책임'이라는 단어를 반복했다. 독립운동가의 후예로서, 그리고 재일 정론지의 수장으로서 그가 짊어진 펜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아 보였다. 평양 지국 개설이라는 그의 호기로운 선언이 머지않은 미래의 보도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다음은 기사 원문 일본어 번역
六三亭の闘魂から自由統一の筆鋒へ…「統一日報」へと続く愛国の火信
[李勝敏東京特派員] 日本列島の中心で韓半島の自由と平和を叫び続けてきた言論機関がある。1959年の創刊以来、在日同胞社会の灯火となってきた「統一日報」だ。独立運動の現場から始まった彼らのペンの先は、今や韓米日の価値同盟の架け橋を越え、「平壌支局開設」という壮大な夢に向かっている。
抗日の火花、六三亭から沸き上がる
統一日報の根源は、1933年3月、中国・上海の料亭「六三亭」にまで遡る。創刊の主役である元心昌義士は、白貞基、李康勲義士と共に駐中日本公使の暗殺を企て、日帝の侵略野望を全世界に知らしめようとした。
密告により挙行は未遂に終わり、13年に及ぶ獄中生活を余儀なくされたが、彼の不屈の独立精神は、後に日本という地で「ペン」を通じて民族の行く先を照らす統一日報の精神的糧となった。
6・25戦争と在日学徒義勇軍、死線を越えた愛国心
解放後も元心昌先生の祖国愛が止まることはなかった。1950年に6・25戦争(朝鮮戦争)が勃発すると、彼は在日民団の事務総長として「祖国なくして自分はない」という旗印の下、642名の在日学徒義勇軍の参戦を主導した。
彼らは仁川上陸作戦をはじめとする主要な戦場で血を流し、勝利の礎となった。元先生はまた「戦災援護事業委員長」を務め、本国へ救援物資や資金を送るなど、海外にいながらも祖国守護に尽力する実践的志士としての面目躍動たる姿を見せた。
銃剣の代わりに「ペン」で築く平和統一
戦争の惨禍を目の当たりにした元心昌先生は、武力ではなく自由民主主義に基づいた平和的統一こそが民族の生きる道だと確信した。これを受け、1959年1月1日、李榮根先生らと志を合わせ、《統一日報》(創刊当時の題号は朝鮮新聞)を世に送り出した。
朝鮮総連の歪んだ扇動に立ち向かい、北朝鮮体制の実情を告発し、在日同胞に韓国人としての誇りを植え付けることが、新聞の使命であり存在理由であった。その後、李承牧社長の代に至り日刊紙へと昇格。日本の政界や知識人社会に影響力を持つ独歩的な韓国系正論紙へと成長を遂げた。
姜昌萬社長の「正論直筆」、韓米日価値同盟の架け橋へ
現在、統一日報を率いる姜昌萬社長は、先代の遺志を現代的な感覚で継承している。彼は激変する国際情勢の中で韓米日価値同盟の重要性を説き、日本国内の嫌韓感情や朝鮮総連の攻勢に論理的に対応している。
「相手は機関銃で撃ってくるのに、我々が竹槍で戦うわけにはいかない」
姜社長のこの一喝は、我々言論がより強力な情報力と論理を備え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切迫感の表れだ。最近、統一日報はデジタルアーカイブの構築や次世代同胞教育に力を注ぎ、過去の記録を未来の資産へと変える革新的なリーダーシップを発揮している。
終わらぬ旅路、「最終目的地は平壌支局」
独立運動の闘魂から始まった統一日報の歴史は、間もなく70年を迎えようとしている。「統一日報の最終目的地は平壌支局の開設である」という姜昌萬社長の抱負は、90余年前、六三亭で元心昌義士が抱いた自由への夢と軌を一にする。
東京の小さな事務所で灯った統一の火花は、今日においても消えることなく、韓半島の真の光復と自由統一へ向かう険しい旅路の道標となっている。
【インタビュー】姜昌萬・統一日報社長が語る「在日正論紙70年」の使命
東京都港区に位置する統一日報社。執務室の壁には、創刊の主役である元心昌義士の写真が掲げられている。六三亭の闘魂が宿るその写真の下で、姜昌萬社長は「我々のペンは今もなお戦場にある」と語り始めた。70年近く日本の地で「自由統一」の灯火を掲げてきた彼の声には、確信が満ちていた。
- 統一日報のルーツが独立運動にあるという点が非常に印象的す。
「統一日報は単なるメディアではありません。元心昌義士が六三亭で見せた抗日の闘魂、そして6・25戦争当時に在日学徒義勇軍を率いたあの愛国心こそが、我々のDNAです。かつては銃で祖国を守ったならば、今は『正論』で祖国を守っているのです。独立運動の精神が、平和的な自由統一運動へと継承されたわけです」
- 「日本は機関銃なのに、我々は竹槍だ」という過去の発言が大きな話題となりました。
「今も有効な診断です。日本国内の朝鮮総連や嫌韓勢力は、高度な情報力と論理で我々を攻撃してきます。しかし、我々は感情的な『竹槍』を振り回すだけではいけません。知性とファクトという『機関銃』を備えなければなりません。統一日報が日本の政界や知識人社会を相手に、韓米日価値同盟の正当性を論理的に説く理由も、まさにここにあります」
- 最近、韓米日の価値同盟を特に強調されていますが、その理由は何でしょうか。
「韓半島の自由統一は、我々だけの力では不可能です。アメリカという右腕、日本という左腕が共に動かなければなりません。1945年以前の日本と、現在の日本を区別する必要があります。今の日本は自由民主主義の価値を共有する核心的なパートナーです。統一日報はその架け橋としての役割を果たし、朝鮮総連の扇動から在日同胞のアイデンティティを守る防波堤になりたいと考えています」
- 「平壌支局の開設」という目標は、非常に挑戦的に聞こえます。
「多くの人は夢だと言いますが、私にとっては必ず到達すべき『最終目的地』です。元心昌義士が六三亭で夢見たのは、単に日帝を追い出すことではなく、我々の民族が自由に、統一されて共に豊かに暮らす国でした。その夢の完成は、北朝鮮の同胞にも自由を届けることです。自由統一の日、平壌の真ん中で統一日報を配ること、それが私の最後の使命です」
- 次世代教育やデジタル革新にも力を入れていると伺いました。
「過去の記録を、埃を被った紙のままにしておいてはいけません。デジタルアーカイブを通じて70年の記録を未来の資産へと変えています。また、日本で育つ次世代の同胞たちが『韓国人』としての根を忘れないよう教育することにも全力を注いでいます。彼らこそが、未来の統一韓国の主役になるからです」
[記者手帳] インタビューの間、姜社長は「責任」という言葉を繰り返した。独立運動家の後裔として、そして在日正論紙の首長として、彼が背負うペンの重みは決して軽いものではないと感じられた。平壌支局開設という彼の堂々たる宣言が、遠くない未来に「速報」として届くことを期待した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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