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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우 행정학박사(지적학전공)/작가 |
고분 양식은 옹관묘 1개, 토광묘 1개, 석총 1개, 판독 불명 18개를 제외하면 모두 상식 석관으로, 87%가 상식 석관묘다. 결국 대마도의 고분 양식은 고조선은 물론 마한.진한.변한의 삼한 연합국인 진국과 동일한 고분 양식인 상식 석관묘라고 정의할 수 있다.
반면에 일본의 고분 양식은 옹관묘로 대마도에서 70Km 떨어져 있는 일본의 이끼도에서 발굴되는 고분은 옹관묘가 주를 이루고 상식 석관묘는 거의 찾아볼 수 없으므로 상식 석관묘가 주를 이루는 대마도의 고분군이 특이한 경우라는 것은 일본 학자들도 인정하는 바이다.
대마도의 매장문화가 일본과는 동떨어지고 우리 한민족의 선조들과 유사하다는 것은 대마도 고분에서 발굴된 유물 현황을 보면 더 쉽게 알 수 있다. 늦어도 기원전 4~3세기경에 형성된 것으로 보이는 대마도 고분의 유물 중에 옥 유물과 말 장신구, 세형동검과 환두대도가 다량 출토되었다는 점에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원전 4~3세기의 일본열도에서는 옥 세공이 발달하지 못했다. 하지만 '삼국지'「위서」 한전에 전하는 그 당시 한반도의 삼한인 진국에서는 ‘삼한 사람들은 정교하게 다듬어진 구슬들을 한 개 또는 몇 개씩 꿰어 귀걸이와 목걸이도 하였으며 옷에 붙이기도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 당시 일본열도에는 없던 옥구슬이 대마도에서는 다량 출토되는 것이다.
말 장신구 역시 주목해서 볼 가치가 있는 유물이다. 말 장신구가 기원전 4~3세기의 유물이라는 데 그 당시 일본열도에는 말이 없었다. 일본에 말이 처음 전해진 것은 5세기경에 백제가 아직기 편에 암수 2필을 보낸 것이 시초다. 일본열도에는 말도 없던 시기에 대마도에서는 말 장신구가 출토되었다는 것은 대마도에는 말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한두 세기가 아니라 무려 8~9세기, 즉 8~900년이나 빠르게 대마도가 일본열도보다 먼저 말을 보유했으니, 이것은 대마도와 일본열도의 문화권이 다른 곳이라는 의문을 품게 하는 것이다.
같은 나라라면 부속 도서에는 교통과 물건의 운반을 편하게 하는 말이 있는데 본국에 해당하는 일본열도로 말이 전해지지 않았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이에 대해서도 '삼국지'의 기록에 의하면 한반도에 존재하던 우리 한민족의 선조들인 진국에서는 소와 말을 타거나 부리는 것이 보편적이었다고 전한다.
대마도에서 발견된 청동검과 환두대도 역시 마찬가지다. 필자가 2012년 5월 22일 규슈 국립박물관을 탐방하였을 때 고대관에 청동검을 전시하고 있었고, 안내 문구에는 반도에서 건너온 양식으로 대마도에서 출토된 것임을 밝혀놓았다. 대마도에서 출토된 청동검은 고조선과 진국에서 사용하던 세형동검, 혹은 한국형 동검이라고 부르는 특이한 양식으로 거의 만주와 한반도에서만 출토되는 것으로 일본열도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이니, 대마도의 고대문화가 한반도의 문화와 일치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대마도 고분에서 발굴된 쇠칼 즉, 환두대도(環頭大刀)는 우리나라 삼국시대에 널리 분포되었는데, 대마도에서 발견된 환두대도 역시 재질이나 형태가 가야 지방에서 출토된 유물과 동일하다.
결국 대마도 매장문화는 고분 양식이 상식 석관으로 대마도 전역에 보편적으로 분포하고, 그 유물이 고조선과 같은 문화를 누리던 진국의 유물과 동일하다는 것 등을 종합해 볼 때, 진국 주민에 의해서 단순히 전래 된 것이 아니라 진국 주민들이 이주하여 그곳을 개척하고 생활 터전으로 삼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으니, 그 영토권은 우리 한민족의 것으로 규명되어야 옳다. (다음 호에 계속)
신용우 행정학박사(지적학전공)/작가/칼럼니스트/영토론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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