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병원 ‘예치과’로 성장 후 섬마을·해외의료봉사로 확대
‘여수꿈장학회’ 설립…초록재단 여수 후원회장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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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일 예치과 원장이 여수애양원에 거주하는 한센인의 사진을 따뜻한 눈빛으로 보고 있다. 신 원장은 한센인들을 찾아 20년째 자발적인 치과치료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
[로컬세계 이실근 기자] 전남 여수시 소호요트장 육상 계류장에는 특별한 파워보트가 한 척 있다. ‘예치과 의료봉사단’이라는 큼직한 글씨가 세겨진 이 배는 여수시 국동에 위치한 예치과 신정일 원장(51)과 병원가족들이 섬마을 의료봉사를 위해 이용하는 교통수단이다.
신 원장이 섬마을 의료봉사를 시작한 것은 올해로 10년째. 한달에 한번씩 병원 식구들과 함께 5~6명 규모의 의료봉사단을 꾸려 여수의 섬마을 구석구석을 찾아가고 있다.
그가 봉사활동을 시작한 것은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5년 여수시 국동의 한 이불집 2층을 임대해 진료 의자 두 개를 놓고 ‘신정일치과’라는 이름으로 개원했다. 그때부터 신 원장은 매달 한센인들이 거주하는 여수애양원을 찾았다. 소외받고, 외면 당하며 살고 있는 한센인들의 얼굴과 입, 이를 직접 보살폈다.
신 원장은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는 뜻에서 이같은 활동을 했다고 회고했다. 그러는 사이 자신이 운영하는 개인병원은 ‘진료를 잘한다’는 소문을 타고 환자들이 몰렸고 개원 10년만인 2005년 지금의 자리에 건물을 지어 ‘예치과’라는 간판을 올렸다.
현재 신 원장을 비롯해 의사 4명과 간호사 등 20여명이 근무하고 있을 정도로 여수권에서는 가장 큰 치과병원으로 성장했다.
신 원장은 이 때부터 봉사활동을 더 조직적으로 체계적으로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섬마을 의료봉사였다. 그런데 이동 수단이 문제였다. 차도선이 다니지 않는 섬이 많은데 무거운 의료장비를 가지고 일반 여객선을 타는 것이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배를 사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그 때 산 배가 지금의 ‘예치과 섬마을봉사단호’다. 당시 주인이 1억원을 달라고 했는데 ‘좋은 일에 쓰겠다’고 사정했더니 절반으로 깎아줬다고 한다.
지금은 신 원장의 봉사활동에 부인도 동참하고 있다. 부인 또한 현재 여수문화병원에서 산부인과 진료를 맡고 있는 의사다. 몇 년 전부터는 친분이 있는 동료 의사들까지 참여해 1년에 한두차례 봉사활동에 나서고 있다. 이 때는 섬마을에 가정의학과, 산부인과, 치과 등 종합병원이 차려지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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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일 원장이 병원 직원들과 함께 몽골에서 환자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5년 전부터는 여름휴가를 이용해 해외 의료봉사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몽골을 비롯해 손길이 필요한 지구촌 곳곳에 사랑의 온기를 나누는데 동참하고 있다.
그는 규모는 작지만 장학사업도 펼치고 있다. 5년 전 서울대에 합격한 한 학생이 가정형편이 어려워 학교에 진학하지 못하는 사연을 접하고 당시 ‘여수 꿈 장학회’를 만들었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병원에서 일반진료비 1%를 적립해 매년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 1200만원을 지원하고 있다.
올해 6월에는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여수후원회장을 맡아 소외계층 아동들을 위한 지원사업에 열정을 쏟고 있다. 새로운 후원자 300명을 추가 발굴해 후원금 규모를 늘리면서 초록우산어린이재단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지난 3일 저녁에는 여수시내 한 레스토랑 야외무대에서 자선음악회를 개최하는 등 후원회 활발히 운영해 나가고 있다.
신 원장은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나만 다 가지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자신을 성장시켜준 지역과 사회를 위해 책임을 다해야 한다”며 “봉사와 기부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사회가 건전해 지고 더불어 사는 사회가 된다”고 말했다.
매일 새벽기도를 나갈 정도로 독실한 크리스찬인 그는 “봉사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고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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