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현세자의 용맹함과 뛰어난 지략에 반한 예친왕 도르곤이 소현세자에게 적토마와 청룡언월도를 선물한다. 그것이 바로 소현세자의 적토마다. 소현세자는 그 적토마를 타고 적진 깊숙이 들어가서 청룡언월도를 휘두르며 용맹하게 싸웠다. 그런데 그 적진이라는 것이, 조선 조정이 하늘처럼 떠받드는 명나라였고, 명나라와 전쟁을 벌인 청나라 편을 들었다는 것이 조선 조정에서는 시빗거리가 되었다.
소현세자는 이미 기울어가는 명나라가 아니라 이제 머지않아 중원을 지배하게 될 떠오르는 청나라 편을 드는 것이 나라를 위하는 길이라는 신념으로 전장에서 적토마를 타고 청룡언월도를 휘두르며 목숨을 걸고 뛰었는데, 간신배들은 그걸 시비 걸어서 소현세자가 청나라를 등에 업고 인조를 축출하고 왕위에 앉으려 한다고 없는 말을 만들고 부풀려서 인조의 판단을 흐리게 만들었다.
인조는 반정으로 왕이 된 인물이다. 반정으로 왕을 만들 때, 반정을 주도하는 자들은 아주 용맹하고 심지가 굳은 인물은 절대 왕좌에 앉히지 않는다. 그런 인물을 왕좌에 앉힐 경우, 소위 반정공신이라는 자들이 왕을 좌지우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고른 인물인 인조는 원래 귀가 얇고 심지가 굳지 못한 인물이다 보니 간신배들의 말처럼 정말 자신도 아들에게 밀려나는 신세가 될 수도 있다는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된다.
더더욱 소현세자가 볼모에서 조선으로 돌아올 때 예친왕 도르곤이 선물한 적토마를 타고 청룡언월도를 가지고 오는데, 그것이 바로 청나라를 등에 업고 자신의 뛰어난 무예를 앞세워 반정하겠다는 의사표시라는 간신들의 혓바닥에 인조가 깜박 넘어가고 만다. 그리고 9년이라는 긴 세월의 볼모를 마치고 돌아와서 불과 2개월 만에 아버지 인조에게 독살당한 조선 최악 비운의 세자 중 한 분이 되신 것이다.
죄라면 오로지 하나, 머나먼 타국 땅에서 볼모임에도 불구하고 조국의 앞날을 위해서 목숨을 걸고 이미 멸망해 가는 명나라를 상대로 용감히 싸웠다는 것이다. 그런 소현세자에게 간신배들은, 오랑캐의 앞잡이가 되어 하늘처럼 받드는 명나라에 항거한 것은 곧 왕을 배척하는 반정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말도 안 되는 논리를 적용했다. 그리고 그런 간신배들의 혓바닥에 녹아난 인조가 나라를 위해 죽도록 고생한 아들을, 아들 이전에 나라의 미래를 걱정한 세자로서 뛰어난 자질을 지닌 것을 높이 평가한 것이 아니라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이다.
예친왕 도르곤이 적토마와 함께 선물한 소현세자의 청룡언월도는, 소현세자가 돌아가신 뒤에 효종이 승계했다가, 훗날 역시 비운의 세자가 되신 사도세자에게로 전해진다. 기록에 의하면 효종의 청룡언월도는 힘깨나 쓰는 장수들도 못 들었는데, 사도세자는 겨우 15세에 효종의 청룡언월도를 휘두르며 무예를 닦을 정도로 무예가 훌륭한 분이셨다. 일각에서는 소현세자에게 물려받은 청룡언월도를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무예를 보이시던 효종을 닮아 그의 청룡언월도를 들고 자유자재로 다루는 것이라고도 했다.
여기에서 잠깐 다시 한번 청룡언월도 이야기를 짚어 볼 필요가 있다. 본 칼럼 제1회에서 말했다시피 우리는 흔히 청룡언월도 하면 의례히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여포와 관우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관우는 엄밀히 말하자면 청룡언월도는 구경도 못 해본 장수다. 정사에 의하면 청룡언월도는 <삼국지연의>에서 관우가 활약한 시대보다 400~500여 년 후인 당나라 시대에 생긴 무기라고 한다. <삼국지연의>는 200년 전후의 군웅할거 시대로 중국이 어지럽던 시절을 무대로 삼고 있으니, 관우가 618년에 건국한 당나라 시대에 생긴 청룡언월도를 사용했을 가능성은 없다고 보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관우가 청룡언월도를 사용하게 된 것은, <삼국지연의>라는 소설이 명나라 때 나관중에 의해서 창작된 것으로 저자인 나관중이 관우를 용맹하게 표현하기 위해서, 자신이 생각할 수 있는 무기 중에서 용맹하고 뛰어난 장수가 사용하기에 가장 잘 어울리는 무기를 청룡언월도로 묘사했고, 그 덕분에 청룡언월도가 관우의 무기가 된 것이다.
결국 청룡언월도는 후세의 작가인 나관중이 관우라는 뛰어난 장수에게 얹어준 무기일 뿐, 실제로 관우는 사용하지 못해본 무기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우가 청룡언월도를 들고 있는 그림은 아주 자연스럽게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삼국지연의>를 알거나 관우라는 장수를 아는 사람은 으레 관우 하면 청룡언월도로 이어진다. 그리고 무속 신앙에서는 청룡언월도를 든 관우가 신으로 떠받들어질 정도이니, 청룡언월도를 잘 다룬다는 것은 그 정도로 무예가 출중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소현세자는 물론 뒤주에 갇혀 생을 마감하신 사도세자 역시 무예가 출중한 분이셨던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두 분 모두 청룡언월도를 주무기로 삼으셨고 청룡언월도가 죽음으로 이르게 하는 구실을 안겨 주었다는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신용우 행정학박사(지적학전공)/작가/칼럼니스트/영토론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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